현대산업개발이 추진하는 지주회사 체제 전환은 정몽규 회장의 지배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현대산업개발이 예상대로 지주회사 전환 수순에 돌입했다. 자신의 지배력 강화와 향후 승계를 위해 그동안 재계에 등장했던 여러 꼼수들의 전철을 밟는 모양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5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공식 발표했다.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5월 1일을 ‘D-DAY’로 잡았다. 존속회사인 HDC주식회사(가칭)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게 되고, 분할신설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 주식회사(가칭)는 사업부문을 맡게 된다.

이는 일찌감치 예상된 수순이다.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 지분 13.6% 보유 중이며, 특수관계인을 모두 포함해도 지분이 20%에 미치지 못한다. 한때 2대 주주로 밀려나는 일도 있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정몽규 회장이 지배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지주회사 전환 카드가 꼽혔다. 관련 법 개정이 임박했고, 현대산업개발이 올 들어 자사주 매입 행보를 보인 점도 이러한 예상에 힘을 실었다.

◇ 지주회사 전환 이후 시나리오… ‘구시대 꼼수’ 마지막 주자되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자체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경영 투명성과 사업경쟁력을 강화하고, 주주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꼼수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앞서 지주회사로 전환한 재벌그룹 중엔 애초에 다른 목적에 더 큰 무게를 싣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바로 오너일가의 지배력 강화 및 승계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자주 드러나는 ‘꼼수’는 소위 ‘자사주 마법’이라 불린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시 신설회사에 대한 의결권이 부활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회사 돈을 활용해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교묘한 수단이다.

현재 현대산업개발이 보유한 자사주는 7.03%다. 전환이 완료되면 지주회사인 HDC주식회사는 기존처럼 7.03%의 자사주를 유지하면서 신설사업회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지분도 7.03% 보유하게 된다. HDC주식회사의 자사주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의결권이 없지만, HDC현대산업개발 지분은 의결권이 인정돼 정몽규 회장의 특수관계인 지분에 포함된다.

현재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18.56%의 지분을 가진 정몽규 회장은 분할 이후 HDC주식회사와 HDC현대산업개발 지분을 18.56%씩 갖게 되는데, 여기에 HDC현대산업개발 지분 7.03%가 더해진다. 이에 따라 정몽규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HDC현대산업개발 지분은 25.59%가 된다. 기존에 없던 7%가량의 지배력이 ‘자사주 마법’을 통해 탄생되는 것이다.

다음 수순은 정몽규 회장의 HDC주식회사 지배력 강화다. 정몽규 회장은 자신의 HDC현대산업개발 지분을 HDC주식회사가 발행하는 신주와 교환할 가능성이 높다. 정몽규 회장 입장에선 지주회사인 HDC주식회사 지분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HDC주식회사를 통해 HDC현대산업개발을 지배하는데도 문제가 없게 된다.

하지만 이는 회사 자금으로 오너일가 지배력을 높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재벌가의 대표적 ‘꼼수’로 지적돼왔다. 이미 규제 움직임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 과정에서 이에 대한 규제를 공약했었다. 정몽규 회장 입장에선 자사주 마법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꼼수의 마지막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몽규 회장이 논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자사주를 소각하거나 매각해버리면 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던 현대산업개발이 돌연 정반대의 행보를 보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뿐만 아니다. 꼼수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이콘트롤스도 정몽규 회장의 지주회사 지배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콘트롤스는 정몽규 회장이 지분 29.89%를 보유중이며 특수관계인까지 더하면 지분이 58.04%에 달한다. 지주회사 전환 이후 아이콘트롤스와 HDC주식회사가 합병하면, 정몽규 회장의 HDC주식회사 지분은 더욱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 아이콘트롤스가 그동안 압도적으로 높은 내부거래를 통해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오너일가가 지배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성장시킨 뒤, 합병을 통해 지배력 확보나 승계 같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오너일가의 비용을 줄여주는 아주 전형적인 꼼수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승계를 위한 준비가 일부 시작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10월 엠엔큐파트너스라는 곳을 설립했으며,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 아이서비스, 아이앤콘스의 지분을 이곳에 전량 매각했다. 아이서비스와 아이앤콘스는 아이콘트롤스의 지분을 총 13.12%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아이콘트롤스와 HDC주식회사가 합병할 경우,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 업계에 따르면, 정몽규 회장의 3남이 엠엔큐파트너스 최대주주에 오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태까지는 정몽규 회장의 자녀가 계열사 지분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는 일이 없었다. 일종의 ‘승계 신호탄’으로 해석될 수 있는 행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모두 그동안 우리 재계에서 자주 목격되며 꼼수라는 지적을 받아왔던 것이다. 적폐 청산의 기치를 내건 새 정부는 이러한 부분에서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변화에 임박해 이뤄지고 있는 정몽규 회장의 분주한 행보는 ‘구시대의 마지막 꼼수’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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