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과 휴일근무는 지금까지 '인력 부족'이라는 이름 하에 정당화돼왔다. 정부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법정근로시간을 단축하려 하는 중이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길고 길었던 법정근로시간 축소논의가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20대국회에 들어와 탄력이 붙었던 근로기준법 개정논의는 지난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어느 정도 모양새가 갖춰졌다. 다만 몇몇 민감한 쟁점에 대해선 아직 여‧야와 노동계 관계자들이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중소기업계는 “임금부담‧인력난 심각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주 68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평일 5일간 40시간의 근무와 함께 연장근로 12시간, 토요일‧일요일 각 8시간의 근무가 포함된다. 주말근무와 추가근무 시에는 50%의 추가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합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이 68시간의 법정근로시간 한도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시행시점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3단계로 차등 적용된다.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기업은 내년 7월부터, 50~299인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49인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개정안의 적용을 받는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는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국회의 합의안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면서도 “보완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중소기업 중앙회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고, 휴일근로 할증률을 현행 50%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일부 중소기업인들은 휴일근로 할증률을 국제노동기구(ILO) 권고기준인 25%로 낮출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중소기업계가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반발한 첫 번째 요인은 임금부담이다. 근로자 1인당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면 같은 작업량을 내기 위해선 그만큼 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 일자리나누기의 연장선상에서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을 보좌하는 셈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는 “보름 앞으로 다가온 최저임금 인상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며 난색을 표했다.

두 번째는 인력난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영세 중소기업 근로자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몇 번씩 채용공고를 내도 필요인력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며 노동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따르면 현재 중소기업계에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일자리는 26만개며, 근로시간 단축이 실현될 경우 44만개까지 늘어난다.

◇ 1주일은 어디까지인가

중복할증 문제는 근로기준법 개정의 또 다른 쟁점이다. 이미 주 40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가 휴일에도 일한다면 얼마만큼의 할증률을 적용받아야 할까. 최근 법원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엇갈린 판결이 나왔다.

부산고등법원 민사2부는 지난 11월 16일, 비정규직 근무자들이 휴일‧연장근무 할증임금을 두고 울산시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 대해 200%의 임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했다. 휴일근로 할증률 50%와 연장근로 할증률 50%를 모두 적용한 결과다. 재판부는 "근로기준법에서 연장, 야간 및 휴일근로에 가산임금을 지급하도록 한 제도적 취지는 연장‧야간‧휴일근로가 근로자에게 더 큰 피로와 긴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라며 노동자의 실질적인 권리보호를 우선시했다.

반면 부산고등법원 민사1부는 이보다 하루 앞서 유사한 사건에 대해 고용주가 150%만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근로기준법이 휴일과 근로일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휴일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지 않았다면 연장수당까지 함께 지급할 의무는 없다는 논리다.

새 근로기준법이 발효된다면 이 논리도 깨질 수 있다. 새 근로기준법이 기존 근로시간 한도 68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인 것은 8시간씩의 근무가 가능했던 토요일‧일요일을 1주일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당초 환노위 여야 3간사는 8시간 이하 휴일노동에 대해 중복할증을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일부 의원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현재는 향방이 애매한 상태다. 한편 중소기업 중앙회는 “중복할증이 적용된다면 중소기업은 연 8조6,000억원의 인건비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 ‘삶의 질’ 높이려면 관계자들이 조속히 합의해야

최근 ‘저녁이 있는 삶’‧‘워크‧라이프 밸런스(워라밸)’ 등의 표현들이 인기를 끈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2016년 평균근로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최하위권에 속하며, 이는 곧 낮은 삶의 질로 이어진다. 국내 경제계에서 사업체수 기준 99.9%, 노동인력 기준 87.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책임이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

취업사이트 잡코리아가 1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직장인의 평균 근로시간은 53.7시간으로 대기업(53.4시간)‧외국계기업(50.9시간)보다 높았다.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추가수당을 못 받게 될 직장인들이 불만을 가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해당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2.8%가 근로시간 단축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수당을 더 받고자 야밤에, 휴일에 책상머리에 앉아 씨름하느니 자신의 시간을 즐기겠다는 뜻이다. 과잉근로가 불가피하다는 중소기업계의 주장이 한국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은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밝혔듯,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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