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가상화폐가 ‘대박 투자’의 대명사로 떠오른 한편, 보다 전통적인 통화에 대한 관심을 아직 버리지 못한 투자자도 있을 것이다. 미국이 올해 초부터 지난 9월까지 이어진 약한 달러 기조를 끝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는 기지개를 펴고 있다. 수출이 되살아나고 금리인상 신호가 지속된 영향이다.

◇ 북한 위협 없다면 원화는 튼튼

2017년을 두 주 남겨놓은 지금, 원화 가치(달러 대비)는 연초에 비해 11%까지 높아진 상태다. 여름 동안 계속됐던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슈와 외국인의 채권매도 랠리 속에서 나타난 결과다. 지난 9월 말 1,145.30원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5일 현재 1,089.14원까지 떨어졌다. ‘강한 원화’는 어느덧 수출기업들의 고민거리로 부상했지만, 동시에 외국 투자자들에겐 새로운 투자처를 열어준 셈이다.

올해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거둔 한국 경제는 2018년에도 3%대 성장률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또한 금리를 꾸준히 인상해나갈 계획임을 밝힌 상태다. 일반적으로 금리가 높아지면 통화량이 줄어들어 화폐가치도 상승한다.

다만 몇 가지 위험요인은 있다. 반도체에 편중된 산업구조는 경제성장률 전망의 변동성을 높인다. 북한과의 갈등이 표면화될 때마다 확산되는 불안심리도 해외 투자자들에겐 달갑잖은 변수다. 국제 금융투자기관 인베스텍은 ‘지정학적 위험이 없다면’이라는 조건 하에 원화가 강세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산운용사 이튼 밴스는 원화 강세 전망에 동의하면서도 북한 관련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매도 포지션을 가져가라고 조언했다.

◇ 빠른 성장세로 외인 유혹하는 동남아시아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한‧중‧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올 한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향후 경기 전망이 밝으며, 현재 화폐가격도 상당히 저렴하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눈독들일 만하다.

말레이시아 링깃은 올해만 가격이 13% 상승했다(달러 기준). 블룸버그는 15일(현지시각) 기사에서 링깃화를 “위안화와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통화로 떠올랐다”고 평가했다. 경제통계사이트 ‘트레이팅 이코노믹스(trading economics)'는 말레이시아의 내년 1‧2분기 경제성장률을 각각 5.2%와 5.5%로 높게 평가했다. 조만간 금리 인상에 나설 듯한 말레이시아 중앙은행(BNM)의 매파적 성향 또한 링깃화에 대한 높은 평가에 한 몫 했다.

인도 루피도 주목되는 통화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인프라 확충과 제조업 육성을 기치로 내건 ‘모디노믹스’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고 있으며, 작년 말부터 진행된 화폐개혁의 영향으로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이던 경제성장률도 최근 다시 회복됐다.

◇ 금리인상 더딜 경우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아시아 통화의 장밋빛 전망에도 불안요소는 있다. 특히 워낙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하는 중앙은행의 특성상, 향후 경제경로에 따라 금리정책이 자국 통화에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우선 거론되는 것은 금리인상의 속도 문제다.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비단 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영국‧일본은 아직까지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는 모양새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작년 말부터 네 차례나 금리를 올려왔다. 이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부채 문제는 적극적인 금리상승을 제약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6년 9월 기준 말레이시아의 총 부채는 GDP 대비 190.6%에 달했으며, 태국 또한 150% 언저리까지 높아졌다. 이미 금리인상 국면에 접어든 한국은 저소득층‧고령인구 등 취약차주의 상환부담에 대한 우려가 높다. 블룸버그는 12일(현지시각) 기사에서 “금리를 인상하려는 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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