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방산비리 사건’ 잇따라 무죄 선고… 전문성 없는 방산감사와 검찰 수사에 업계 분노
“실적쌓기 식 감사·수사, 반드시 시정해달라” 국산 무기개발자 청원 본격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정권에 시작된 방산비리 수사 원점 재검토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글을 게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청원인은 "실적쌓기 식 무리한 방위산업 감사·수사는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지난 정권의 ‘묻지마’식 방산비리 수사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리한 감사나 수사가 있었다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방위산업 분야에 대한 무리한 감사와 수사를 지적하는 청원글이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법원이 방산비리 의혹 사건에 대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감사원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청원이 ‘나비효과’를 불러 올 수 있을 지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실적쌓기 식 무리한 방위산업 감사·수사 이제 그만”

지난 17일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난 정권에 시작된 방산비리 수사 원점 재검토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청원글을 게시됐다.

청원인은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막무가내식 방산비리 수사는 큰 성과없이 마무리 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아직도 감사원의 권고 때문에 망설이는 공무원 조직과 ‘방산비리 수사’라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비정상적인 조직의 생사를 건 치킨게임으로 아직도 국내 방산업체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해외 도입장비들의 수사는 실적내기가 어려워서인지, 국내 업체들을 상대로 한 실적내기 감사와 수사들이 반복되어 왔다”며 “급기야 한 젊은 연구원을 자살로 몰아갔고, 몇 년이 지난 지난주 금요일 결국은 무죄를 받았다. 무리한 감사나 수사가 있었다면 바로잡아 달라”고 강조했다.

청원인은 그러면서 “방산분야 종사자들도 이 나라의 국민이다. 잠재적 범죄조직에 속해 잠재적 범죄자로 더 이상은 살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이번 청원의 배경은, 지난 15일 법원이 국산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 연구원들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5년 감사원은 현궁에 대해 ‘비리무기’로 규정하고, ‘개발비리 의혹’이라며 현궁 연구원들을 방산비리범으로 몰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후 검찰은 현궁 연구원 3명을 방산비리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그러나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기소된 3명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법원에서 방산비리 혐의 사건에 대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감사원을 향한 신뢰가 크게 추락한 상태다. 애초 비전문적이고 일방적인 엉터리 감사로 검찰에 수사 의뢰한 탓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뉴시스>

지난 2015년 개발된 ‘국산무기’ 현궁은 ‘국가 우수연구개발 100선 선정’에 이어 ‘국방과학상 금상’ ‘연구개발장려금 은상’을 받을 정도로 훌륭한 무기다. 해외에서도 호평 받았다. 하지만 무기에 대해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감사원과 검찰은 박근혜 정부의 ‘방산비리 척결’ 지시에 따라 짜맞추기식 감사·수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연구원 1명이 무리한 감사와 조사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산헬기 ‘수리온’ 역시 비슷한 경우다. 2015년 감사원은 KAI가 수리온을 개발하면서 원가를 부풀려 방사청으로부터 547억원을 받아내 빼돌렸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법원은 감사원의 감사가 잘못됐다고 판결을 내렸다. 판결에 따라 정부는 KAI에게서 빼앗은 돈에 이자까지 덧붙여서 KAI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자만 최소 100억원이다. 감사원의 엉터리 감사 때문에 혈세 100억 날리게 된 셈이다. 특히 감사원은 당시 감사 과정에서 수리온과 협력업체들의 중요 영업비밀을 홈페이지에 죄다 공개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였다. ‘아니면 말고’ 식 엉터리 감사결과에 말도 안되는 행위까지 벌어졌지만, 감사원 관계자들은 줄줄이 승진했다.

감사원은 최근에도 수리온을 ‘깡통 헬기’로 매도하며 마치 적폐인양 지적한 감사 결과 발표했다가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력화 결정을 두고도 국방부와 방사청, 육군은 물론 정치권까지 가세해 “수리온 운용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감사원은 경직된 태도로 일관했다. 이 과정에서 수리온의 신뢰도는 고꾸라졌고 KAI 부사장은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 막무가내 감사 여파 현재진행형… 해외업체들만 ‘살 판’

무리한 감사의 여파는 현재진행형이다. 오는 26일(화) 예정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국산 장거리레이더 체계개발 사업 중단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 방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당장 장거리레이더 체계개발업체와 참여 협력업체들은 재시험의 기회만 준다면 성능을 입증해 보이겠다며 개발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동남아 국가에서 국산 장거리레이더에 관심을 가지고 군 관계자가 방문을 추진하는 등 수출 가능성까지 타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서류, 절차상 논란으로 개발실패라는 딱지를 붙이기에는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문제는 이러한 전문성 없는 방산감사에 득을 보는 것은 결국 해외업체들이라는 사실이다. 전문성 없는 감사결과로 국내 개발에 지장을 받으면 결국 수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해외 제품을 들여와야 할 가능성이 크다.

사정이 이쯤되자 참다못한 방산업계 관계자들의 분노가 청와대의 문을 두드린 것으로 보인다.

방산업계 전현직 관계자들은 감사원의 엉터리 감사,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결국은 소중한 인재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며 강하게 성토하고 있다. 사진은 검찰이 한 방산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해당 청원글에는 22일 오후 3시 현재 2,339명이 참여했다. 대부분 동병상련을 느끼는 방위산업 관계자들을 비롯해 국산 무기 개발자들로 추정된다. 실제 청원에 동의의사를 표시한 이들의 상당수는 방위산업에 대한 무리한 수사와 비전문적인 감사에 대해 강한 성토를 쏟아냈다.

한 네티즌은 “정말 방산비리가 있었는지 아니면 실적을 쌓기 위한 누명이었는지 꼭 밝혀주시기 바란다”며 해당 청원글에 동의글을 남겼고, 또 다른 네티즌은 “결국 법원에 가면 무죄가 될 것을 지적하는 너무나 보수적인 감사,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실적 올리려고 생사람 잡는 감사원이 되진 맙시다” “연구원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가족들의 명예도 회복시켜 달라” “해외 개발을 참고해 보라. 세상에 100% 개발 성공이 어디 있나. 말도 안되는 이유로 비리로 몰고 가는 감사를 시정해달라” 등의 의견이 줄을 이었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방산비리는 반드시 척결돼야 하는 대상임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첨단 국산무기 개발을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과정이 필요한 현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시행착오와 비리는 구분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적어도 개발완료를 자신하는 업체에게 한 번의 기회는 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개발자들의 안타까움을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해당 청원의 마감일은 내년 1월 16일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오른 지 엿새째인 22일 현재, 참여자는 2,000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청와대가 청원에 답변을 하려면 30일 동안 청원인수 20만명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청원인수 달성 여부를 떠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방위산업에 대해 업계 전·현직 무기 개발자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리 가볍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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