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전북 군산시 내초동의 한 야산에서 고준희 양을 직접 유기했다고 자백한 부친 고모(36) 씨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수진 기자] 전북 전주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됐던 고준희 양이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준희 양은 이미 8개월 전 숨졌고, 수건에 싸인 채 야산 구덩이에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섯 살 어린아이를 야산에 묻은 이는 다름 아닌 준희 양의 친아버지였다. 숨진 아이를 구덩이에 묻고도 버젓이 실종신고를 하고 ‘아이를 찾는 척’ 연기했던 ‘인면수심’ 행각에 공분이 일고 있다.

◇ 실종인 줄 알았더니 이미 8개월전 숨져 친아버지가 야산에 매장

고준희 양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지난 8일 실종신고가 접수되면서다. 준희 양의 친아버지인 고모(36) 씨의 내연녀 이모(35) 씨는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가 없어졌다”고 이날 경찰에 실종신고를 접수했다. 이씨는 고씨와 사실혼 관계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준희 양을 지난 4월 자신의 어머니인 김모(61) 씨에게 보냈고, 이때부터 김씨는 준희 양을 전주의 한 원룸에서 맡아 길렀다.

이상했던 것은 실종신고 시점이다. 당시 이씨는 ‘11월 18일 아이가 사라졌다’고 진술했다. 실종신고를 한 것은 12월 8일로, 준희 양이 사라진지 20일이 지난 시점에 실종신고를 한 셈이다. 이씨는 신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실종 당일 고씨와 다퉜고, 자신의 어머니 김씨와 함께 전주 우아동 원룸에 가보니 준희가 없어 친아버지(고씨)가 데리고 간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실종시점에 맞춰 주변 CCTV를 모두 분석했지만 준희 양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실종 신고 접수 일주일 만인 지난 15일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하지만 잇따르는 제보와 신고에도 결정적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수상한 점은 또 있었다. 아이의 실종에 가장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할 가족들이 정작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것. 특히 준희 양의 아버지 고씨는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도 ‘내가 피해자냐. 피의자냐. 기분 나빠서 조사를 못 받겠다’며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고씨와 내연녀 이씨, 이씨의 어머니인 김씨 등이 준희 양 실종신고 전에 휴대전화를 한꺼번에 바꾼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들 가족을 향한 의구심은 커졌다.

실종된 것으로 추정됐던 다섯살 고준희 양이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이를 야산에 묻은 사람은 다름 아닌 준희 양의 친아버지였다. 사진은 앞서 준희 양을 찾는 수색 전단.<전북경찰청 /뉴시스>

경찰은 결국 가족을 상대로 강제 수사에 나섰다. 특히 올해 초 고씨와 김씨가 함께 군산을 다녀온 사실을 파악한 경찰의 집중 추궁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은 28일 오후 8시께 고씨로부터 “숨진 준희를 군산의 한 야산에 버렸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이후 7시간 가량 수색작업을 펼친 끝에 경찰은 29일 오전 4시50분께 군산시 내초동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준희 양을 발견했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고 있어 또래 아이들보다 작은 체구인 준희 양은 수건에 싸인 채 30㎝가량 파인 구덩이에 묻혀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준희 양의 사망 시점이다. 고씨는 준희 양이 이미 4월 26일에 숨졌으며 사망한 딸을 4월 27일 야산에 묻었다고 진술했다. 야근 후 돌아와보니 준희 양이 숨져 있었고, 준희 양 친모와의 이혼소송에서 불리할 것 같아 아이를 야산에 묻었다는 것이다.

고씨와, 내연녀 이씨의 어머니 김씨는 준희 양의 사망사실을 숨기려고 치밀하게 알리바이(현장부재 증명)를 꾸민 사실도 드러났다. 고씨는 준희 양이 숨지고 나서도 준희 양을 보살피던 김씨에게 양육비 60만~70만원을 매달 지원했고, 심지어 김씨는 준희 양 생일인 7월 22일에 맞춰 “준희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다”며 이웃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와 김씨는 지난 4월 준희 양의 시신을 암매장한 뒤 실종 신고까지 8개월 동안 철저히 '이중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전주덕진경찰서는 준희 양 시신을 군산의 한 야산에 유기한 혐의로 고씨와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이와 함께 준희 양의 시신을 수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부검을 의뢰한 상태다.

사건을 담당한 김영근 전주 덕진경찰서 수사과장은 29일 브리핑에서 “준희 양 시신 유기 사건은 학대치사 가능성이 있다”면서 “자세한 동기 등을 아직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준희 양의 친아버지 고씨는 범행동기와 공모여부, 유기수법 등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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