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서 마시는 기네스는 정말 화학식에서나 나오는 ‘염화질소’를 마시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기네스 스타우트 (흑)맥주의 색처럼 그냥 검다고 해야 하나? 가끔 공수해 온 생맥주를 마셔도 크게 다를 게 없다. ‘이런 맥주를 왜 열광하며 마시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다시는 진열대에 있는 기네스에 손이 가지 않는다. 편의점에서 외제 맥주를 4병에 만원이나 9천원 심지어 8천원대 판매를 해도 하프앤하프를 해서 마실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기네스는 잡지 않는다. 그러는 중에 한 분이 ‘기네스 맥주 아일랜드에서 마시면 다르다’고 전한다.

정말 다를까? 마셔보지 않고 ‘뭐 다를게 있겠어’라고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져도 되는 걸까? 정말 여기랑 다른 맛일까? ‘현지가면 거기 프리미엄이 있을테니 좀 더 낫겠지’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가서 마셔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화두처럼 갖는 것을 보면, 하나 명확해지는 것은 스스로가 꽤나 맥주를 좋아하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를 본다. 월터가 보드를 타고 질주할 정도로 매끈한 도로를 가진 아이슬란드를 왠지 모르게 ‘아일랜드’로 착각한다. 그래 월터처럼 나도 상상만 할 게 아니라 ‘아일랜드’를 가봐야 겠다. 왜? 맥주 마시러.

더블린에서 벨파스트 가는 도로 주변의 한 전망대에서 본 아일랜드 농촌 풍경.

아일랜드 표를 예약하고 한 참 지난뒤에야 월터의 촬영 배경지가 아일랜드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의 주민 가운데 아일랜드인이 적지 않고 오로라 때문인지 비행기값이나 숙박비 등 여비가 매우 비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취소 수수료도 있고 해서 결국 벤 스틸러 아니 월터의 상상은 포기하고 그냥 (기네스 생)맥주를 마시러 가는 게 상책이라며 실수를 기회로 살리기로 작정했다.

브리티시 에어웨이즈를 타고 런던 히드로 공항을 들러 아일랜드로 향하는 비행기는 매우 시끌벅적하다. 오해를 받을까 말하기 어렵지만 감히 말한다면 우리 국적기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몸매의 힘차고 친근한 분들이 우리들의 가방을 척척 들어 올려준다. 항공기 뒷자리에 가면 스튜어디스가 아닌 크류(crew)인 여승무원들이 친근하게 권해주는 음료들 가운데는 미니어처 스카치도 포함된다. 면세점에서 10불 가까이 주고 마셔야 하는 싱글 몰트까지 몇 병씩 안겨주기에 작심하고 마시려고 했던 맥주 ‘런던 프라이드’는 구경도 못했다.

국내에서 찾지 않는 농심라면이지만 비행기안에서 편하게 제공해주는 신라면 컵라면으로 속을 풀고 이번에는 와인에 도전한다. 항공기에 퍼지는 신라면 냄새로 젊은 배낭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주변에 모여들고 테이크용 커피처럼 하나씩 들고 폭풍흡입하듯이 마시느라 정신이 없다.

전망대에서 만난 한 아일랜드 운전사는 맥주 한잔 가볍게 하고 차에서 자고 간다고 해서 준비해 간 컵라면과 보이차를 대접했다.

국내에서 그동안 못마셨던 술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더라도 ‘브리티시 에어웨이’의 와인은 너무 아니었다. 그냥 식은 포도주 국물 같았다. 굳이 컵라면을 안먹었더라도 술이 깰 정도로 저품질의 와인 때문에 더 이상 술에는 손을 못대고 덕택에 숙취 걱정도 사라졌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는 자주 결항이 되나보다. 안개 때문이라고 하는데, 도착해 보면 안개는 아침에 있었던 일인데 오후 비행기가 결항이 되었다. 대충 손님이 적은 한낮의 비행기를 취소하고 오후나 저녁 타임으로 손님들을 몰아버린걸까? 여하튼 대기하고 기다려야 할 시간이 길어진 만큼 면세점 구경을 할 시간은 충분해 졌다. 비행기 탑승 초반에 마신 술도 다 깼지만 아일랜드가서 렌트카를 해야 하기에 더 이상 술은 손 댈 수조차 없었다. 까닭에 히드로 공항에서 무료로 시음할 수 있는 수많은 스카치를 눈물을 훔치면서 뒤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담에는 술 안좋아하거나 못마시지만, 운전을 잘하는 친구와 꼭 동행해야 겠다며 때늦은 후회를 해본다.

※ 이 글은 본인이 특수하게 우연히 경험한 이야기일 수 있으며, 일반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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