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통화와 자국통화의 가치를 비교하는 환율은 수출기업의 영업이익에 큰 영향을 끼친다. 최근 원달러환율이 뚝 떨어지면서 수출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환율이 심상치 않다. 17년 봄부터 1,090원을 기준으로 등락을 반복하던 원·달러 환율은 10월을 기점으로 완전한 하락세를 그리고 있으며, 지난 2일에는 1,063.50원까지 떨어졌다. 해외여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호재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은 경제계에는 반갑잖은 소식이다.

◇ 원화 강세 가중되는데… ‘엔저’는 여전

국제무역원의 김건우 연구원이 수출기업의 18년 1분기 경기전망을 조사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수출 애로요인으로 원화환율의 변동성 확대를 뽑은 기업의 비중은 17.2%로 매우 높았다. 응답률뿐 아니라 작년 말 대비 응답률 증가폭(7.0%p)도 가장 컸다. 수출채산성에 대한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는 94.1로 지난 2분기보다 10p 가까이 떨어졌다.

경기가 활황을 맞았을 때 통화가치도 올라가는 만큼, 환율 하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관측되고 있는 환율하락폭은 예상치를 뛰어넘고 있다. 동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수출기업의 49%는 2018년 사업계획서에서 환율이 1,075원에서 1,125원 사이에서 형성될 것으로 예측했다. 다섯 곳 중 한 곳은 1,125원 이상으로 내다봤으며, 1,075원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기업체는 10%에 불과했다. 산업별로는 농수산물업계와 섬유·의복 등 경공업, 생활용품 업체들이 1,076원에서 1,081원까지 상당히 낮은 환율전망을 제시했지만 현재 환율은 이보다도 낮다.

반면 미국·유럽 등 거대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일본 경제계의 지난 한 해를 요약하는 단어는 다름 아닌 ‘엔저현상’이다. 16년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14엔 이상 높아졌던 엔화 표기 달러가치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한국의 수출기업들에겐 악재다.

4일 조찬 회동을 가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환율 급락에 대해 “과도한 쏠림이 있을 경우 적극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기본적으로는 “시장의 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 원인은 튼튼한 경제성장과 조용한 북한

수출기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오른 ‘강한 원화’를 촉발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성장이다. 68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 경상수지는 물론, 금융시장도 원화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작년 12월 발표한 ‘환율변동의 결정요인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GDP 대비 자본수지 및 금융계정이 1%p 상승할 때 원·달러 환율은 0.61%p 낮아진다는 분석결과를 내놓았다. 연구를 진행한 박용정 연구위원은 “(한국의) 자본수지 및 금융계정의 흑자 수준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특히 금융계정 중 증권투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원화 절상 요인을 설명했다.

미국 또한 작년 한 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다만 몇 가지 정치적 이유들이 ‘강한 달러’의 발현을 가로막고 있다. 감세안이 의회를 통과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수행능력에 대한 신뢰도는 여전히 낮으며,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제롬 파월 연준이사가 차기 연준의장으로 지명되면서 완화적 통화정책도 당분간 계속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외국인의 원화수요를 낮추는 제1요인이었던 북한의 위협도 최근 잠잠하다.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금융안정성을 위협해왔던 북한은 새해 들어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한데 이어 이어 3일에는 판문점에 연락채널도 개통됐다. 물론 남북관계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만큼, 북한은 앞으로도 환율시장의 변수로 남아있을 것이다.

◇ 환율 취약업종은 농수산물·섬유·의복

낮은 환율을 반길 수출업체는 거의 없지만, 그 영향력은 산업마다 조금씩 다르다. 국제무역원은 매출액이 시장의 수급상황에 크게 좌우되는 반도체와 환 헷지 비율이 높은 조선업계, 해외생산비중이 큰 무선통신업계에서는 환율변동의 파급력이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상대적으로 국내생산비중이 높고 사업체 규모도 작은 섬유업계와 농수산물 수출업체에서는 채산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앞서 언급한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 조사결과에 따르면 수출에 가장 큰 걱정거리로 환율변동을 지목한 비율은 농수산업계에서 24.3%로 가장 높았으며, 섬유·의복업계도 18.3%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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