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을 중심으로 근로이사제 도입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금융권에 근로이사제 도입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공부문 근로이사제 도입을 공약한데다 지난해 7월에는 100대 국정과제에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을 명시하기도 했다. 이후 금융노조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공성이 강한 금융권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 노조는 3일 우리사주조합의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 목적’에서 ‘향후 경영권에 영향을 주기 위한 주주제안’으로 변경 공시했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노조 추천 사회이사 선임안건을 신청할 방침이다. 다만 금융업계는 근로이사제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 근로이사제가 주식회사에 적합하지도 않고, 구조조정 등의 긴급한 사안에 근로자 권익에만 치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 논란으로 그치던 근로이사제 도입... 금융업에 부는 현실화 바람

근로이사제란 근로자의 대표가 경영활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최근 논의가 진행 중인 제도는 이사회의 이사로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영과정의 참가활동을 말한다. 국내에서 2016년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우리사주조합에 사외이사 추천·선출권을 부여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부터 논의가 본격화됐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20일 KB금융그룹 노조가 주총에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 후보 선임안을 상정하면서 관심이 모아졌다. 당시 안건은 외국인 주주 등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KB금융의 최대주주(지분율 9.79%)인 국민연금공단은 찬성표를 던졌다. 이후 같은해 12월 20일 금융위원회의 민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금융사에 근로추천이사제 도입 검토를 권고하면서 금융업에 근로이사제 현실화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행정혁신위는 금융업 근로추천이사제 도입 이유로 ▲근로자 경영참여로 내부 견제 강화 ▲노사간 갈등 예방 및 생산성 개선 ▲유럽 국가에서 이미 도입 운영 중인 제도라는 점을 들었다. 윤석헌 금융혁신위원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회사의 건전성 확보, 금융의 공공성 유지 등 공적 가치를 위한 정부의 역할 및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권고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윤 위원장은 또 “근로자의 경영참여로 내부 견제가 이루어져 경영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근로자추천이사제는 금융사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므로 이해관계자 간의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된 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찬반 입장 ‘팽팽’ 근로이사제, 첨예한 갈등 예고

근로이사제 도입이 위에서부터 추진된다는 점에서 실제 도입 여부는 시간문제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금융권에선 근로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가 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근로이사제 도입은 ‘거수기 이사회’를 방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강력히 떠올랐다. 경영진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사외이사제도가 오히려 기업의 거수기 노릇을 하면서 개선 요구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기준 국내 상장기업 882곳의 이사회에서 사외이사가 반대의견을 한 차례라도 표명한 적이 있는 기업은 전체의 2.8%에 불과했다. 이에 사외이사제도가 본연의 기능을 되찾기 위해 근로이사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물론 근로이사제는 도입에 있어 찬반 논쟁도 팽팽하다. 대표적인 찬성 근거는 근로이사제 도입으로 오너의 독단 및 전횡을 견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경영진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으로 인한 노사갈등을 예방할 수 있고, 오히려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근로이사제가 시행되고 있는 국가일수록 파업 일수가 적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반면 근로이사제도가 국내 기업경영과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독일의 경우 전체 기업 중 90%가량이 유한회사이지만, 국내 기업은 95%가 주식회사로써 근로이사제 도입시 주주들의 이익에 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기업의 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등 긴급한 결정 사항을 앞두고 노사 간 갈등으로 신속한 결정이 불가능해진다는 지적이다.

다만 한 두명의 근로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가 경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는 현실론도 있다. 여기에 근로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와 시민 대표자들도 참여해 민주성을 높이자는 의견도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 스웨덴 등 15개 국가는 공공과 민간부분 모두 근로이사제를 도입했다. 공공부문만 도입한 국가는 그리스, 스페인 등 4개국이다. 일본에서는 2014년 회사법 개정안 발의를 통해 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 여부를 검토했지만 경제단체연합회의 강력한 반대로 입법화하지 못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