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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의 ‘문예노트’] 실수로 가버린 아일랜드 여행기➃
하도겸 칼럼니스트

북대서양 북동부에 위치한 아일랜드공화국(Republic of Ireland)은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B.C. 9세기 경 유럽에서 이주해온 켈트족이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종교적으로는 5세기에 성(聖) 패트릭이 전한 가톨릭교가 급속히 전파되어 지금까지도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는 나라다. 8세기말에 침입한 강력한 바이킹족 그러니까 노르웨이족을 1014년에 격퇴하기도 한 자긍심이 있는 민족이었다. 안타깝게도 인구수로 밀어부친 것 때문인지 12세기부터는 가까운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 이상으로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는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19세기의 아일랜드 역사가 윌리엄 리키(William E. Lecky)가 “인류 역사상 이들만큼 고난을 겪은 민족은 일찍이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가까운 나라 영국에 의한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16세기부터는 갈등이 고조되었다. 영국이 국교를 집요하게 강요하자 아일랜드 민중은 반항하기 시작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 제임스 1세와 특히 청교도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크롬웰은 구교도인 아일랜드인을 철저하게 진압해서 토지를 몰수하여 영국인에게 분배하였다. 그리하여 영국인 지주 아래 아일랜드인은 비참한 소작농(小作農)으로 전락하였고 유명한 ‘아일랜드의 빈곤’이 시작되었다. 크롬웰은 일기에서 아일랜드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즐거움”으로 표현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국인에게야 훌륭한 정치가였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같으면 전범으로 사형을 받아야 할 사람인 듯하다.

사진은 더블린국제공항

지금까지도 아일랜드인들은 크롬웰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일랜드인의 피 속에는 아울러 영국인에 대한 저주와 복수심이 불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여행 중 만난 한 한국인은 우리나라와 아일랜드가 비슷하다며 한국인이 ‘아시아의 아일랜드인’이라고 표현한다. 아일랜드와 우리나라는 오랜 식민지의 한(恨), 강렬한 민족정신, 크게 떠들며 잘 싸우고 음주가무도 즐기는 민족성, 노인을 공경하는 대가족 전통과 자녀교육열 등이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말이다. 정말 그런 면이 있다.

기나긴 저항 끝에, 제1차 세계대전 후 영국 본국이 제안한 얼스터지방의 분리, 아일랜드 자치령이라는 타협안이 승인되어 1921년 12월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되었다. 아일랜드섬의 32개 중에서 6개 군은 영국령 북아일랜드로, 26개 군은 외교, 군사, 경제 등의 실권을 영국 본국 정부가 장악한 아일랜드로 분할되었다. 영국연방에 속하였으나 1949년 부활절봉기 33주년을 기념해서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바꾸고 완전독립을 이루었다.

아일랜드와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런 영국과 아일랜드의 처절한 역사를 간단히 익히고 가는 것이 좋다. 이 두 나라의 역사적이고 다분히 감정적일 수 있는 문제를 실수로라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아일랜드에도 영국인이 적지 않고 영국에도 아일랜드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까닭에 모습이 거의 비슷하게 보이는 이들의 국적을 묻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지레짐작하여 모국이나 상대국의 이야기를 편히 했다가는 시쳇말로 ‘무덤’을 파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참으로 조심스럽게 해야 할 이야기지만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내내 영국이 해도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사의 나라’라고 알려진 영국의 잔학성에 관해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듯하다. 한일관계를 비롯해서 양국의 역사문제는 역시 가해자 국가의 태도가 중요하다. 마치 피해자나 이미 용서를 구했다는 자세보다는 끊임없는 충분한 사과가 필요한 듯하다.

시사위크  sisaweek@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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