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그는 이번 AEA 연례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인들의 모임인 전미경제학회(AEA)가 지난 5일부터 7일까지(현지시각) 필라델피아에서 연례학술총회를 열었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연방준비은행의 고위인사들, 백악관과 재무부의 핵심 관료까지 참석자 한명 한명의 경력을 서술하는 것만도 힘에 부치는 일이다. 새해를 맞아 열린 ‘경제인의 축제’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까.

◇ 감세 불구 “금리인상 가속화는 어려워”

2017년 경제이슈를 돌이켜볼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금리인상 문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지난 9월 2018년 중 금리를 세 차례 인상할 것이라고 예고했으며, 12월 발표에서도 같은 계획을 밝혔다. 동기간 연준이 올해 미국경제성장률 전망을 2.1%에서 2.5%로 높였음에도 금리인상계획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특히 이 두 번째 금리인상계획은 약 1조5,000억달러 규모의 감세안이 의회를 통과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던 상황 속에서 발표돼 더욱 주목을 모았다. 일반적으로 감세정책은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높여 금리인상을 가속화하는 특성을 가진다. 비록 감세안 자체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지만, 지난 주말 필라델피아에 모였던 경제인들 다수는 금리정책과 조세정책이 반드시 보조를 맞출 필요는 없다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와 같은 분위기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연준이 감세를 의식해 금리인상속도를 높일 필요는 없다”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 케빈 하셋의 발언이다. 소득세 인하에 자극받아 민간소비가 다소 증가하더라도 법인세를 감면받은 기업에 비할 바는 아니며, 잠재성장률을 높여 공급 측면을 강화할 수 있다면 가격상승압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물가상승률도 아직 낮은 수준이다.

올해 금리인상횟수를 2회로 줄일 것을 주장한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작년 연준의 금리인상결정에 반대했던 경력이 있는 제임스 블라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도 비둘기파적 발언을 내놨다. 감세가 미국경제에 특별한 이익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하커 총재는 물론, “투자심리에 불을 붙여 경제성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린 블라드 총재도 연준이 현재 금리수준을 당분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가시적인 개선이 관찰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글렌 허바드 콜롬비아대학 교수도 현상 유지에 힘을 실었다. 허바드 교수는 중앙은행이 시장수요의 변동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연준에게 해 줄 말은 ‘금리인상계획을 계속 유지해도 괜찮다’는 것뿐이다”고 밝혔다.

◇ 필립스 곡선과 트럼프 대통령

한편 이번 총회에서는 참석자들의 강한 비판을 받은 인물이 둘 있었다. 첫 번째는 ‘필립스 곡선’을 낳은 윌리엄 필립스 박사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은 역의 관계에 있다는 필립스 곡선은 수십 년 동안 각국 중앙은행들이 적정 물가와 임금상승률을 재단하기 위해 애용해온 도구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낮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관측되면서 필립스 곡선의 명성도 크게 퇴색됐다.

저명한 거시경제학자 로버트 홀은 필립스 곡선을 “끔찍한 아이디어”라고 불렀으며, 연준의 일원인 블라드 총재 또한 “실업자에 대한 물가상승률의 영향력은 매우, 매우 작다”는 의견을 밝혔다. 필립스 곡선의 신봉자로 알려진 재닛 옐런 연준의장 또한 낡은 경제이론에 매달려 시간을 지체했다는 이유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블룸버그는 이를 두고 “경제학자들이 연준 통화정책의 기반에 일격을 날렸다”고 표현했다.

또 다른 표적지는 다름 아닌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난 성과에 대해 공동으로 세션을 진행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로렌스 서머스 교수는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미국의 경기회복은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으며, 감세안의 경우 재정적자를 높여 부정적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스티글리츠 교수는 북대서양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FTA 재협상 등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의 리더십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수 언론에 따르면 스티글리츠 교수는 미국과 FTA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에게 “미국이 흑자를 보고 있는 서비스부분을 강조하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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