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국제표준화기구 인증을 획득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리베이트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약업계의 의지가 ‘ISO37001’ 도입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ISO37001은 ISO(국제표준화기구)가 2016년 10월 제정한 ‘반부패 경영 시스템’으로 현재 16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기업은 물론 정부 기관에도 도입할 수 있으며, 조직에서 발생할 수 있는 뇌물수수 등의 위험을 미리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주관하는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P) 평가를 통해 ‘윤리경영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은 이제 국제 인증 획득으로 글로벌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제약업계가 신약 및 기술 수출로 ‘잭팟’을 터뜨린 만큼 국제 인증은 필수적 요소가 됐다는 평가다.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2019년까지 50여개 제약사 도입 추진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019년 상반기까지 순차적으로 회원사들의 ISO37001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협회는 우선 오는 5월까지 ▲녹십자 ▲대웅제약 ▲대원제약 ▲동아ST ▲유한양행 ▲일동제약 ▲코오롱제약 ▲한미약품 ▲JW중외제약 등 9개사의 ISO37001 도입 절차를 진행할 방침이다.

이어 오는 10월까지 ▲동구바이오 ▲명인제약 ▲보령제약 ▲삼진제약 ▲안국약품 ▲종근당 ▲휴온스글로벌 등이 제도 도입을 추진한다. 다음으로 내년 3월까지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동국제약 ▲동화약품 ▲신풍제약 ▲제일약품 ▲한국얀센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한국아스텔라스제약 ▲한독 ▲CJ헬스케어 ▲LG화학 ▲SK케미칼생명과학부문 등이 참여할 계획이다.

다만 협회는 ISO37001 인증이 공정위 CP 인증보다 까다로운데다 부서 및 인력 추가배치에 따른 비용까지 드는 점을 감안해 기업당 700만 원가량의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ISO37001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공정위 산하 공정경쟁연합회 및 한국표준협회 등의 인증기구로부터 실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사와 인터뷰 담당자를 부서별로 지정해야 한다.

한미약품은 협회가 ISO37001 도입 결정을 하기 전부터 자체적으로 절차에 착수, 지난해 11월 업계 최초로 ISO37001 인증을 획득했다. 한미약품은 이를 위해 내·외부 부패유형 파악과 심사원 육성, 부패방지 방침 선포, 부패방지 목표 수립, 자율준수관리자 중심의 부패방지 관리 시스템 등을 구축하고 강도 높은 평가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은 ISO37001 인증을 통해 내부임원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 후 추락한 신뢰도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업계는 국내 제약사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ISO37001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원기 한국컴플라이언스인증원 원장은 지난 8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발간한 정책보고서를 통해 “리베이트에 대한 규제가 의료법과 약사법으로 확대되면서 제약업계는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됐다”면서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규제에 대한 강력한 실천의지와 경영진의 인식전환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 CP·ISO·선샤인액트까지... 강화되는 리베이트 규제들

부패방지를 위한 규제안이 다양해지면서 제약업계는 자의든 타의든 ‘리베이트와의 결별’을 선언하게 됐다. 제약업계는 투명경영을 인정받기 위한 국내외 인증제도는 물론 한국형 ‘선샤인 액트’ 도입으로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다. 하지만 이같은 규제들로 인해 불법거래가 줄면서 장기적으로 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올해부터 제약회사나 의료기기제조사 등은 의료인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경우 해당 내역을 보고서로 작성‧보관하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요청하는 경우 이를 제출해야 한다. 업계 요청으로 2년간 유예됐던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작성 제도’가 본격 시행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 등에서 시행 중인 선샤인액트(Sunshine-Act)와 유사해 한국형 선샤인액트로 불리고 있다.

이에 관련 규제를 적용받는 제약회사 등은 ▲견본품 제공 ▲학회 참가비 지원 ▲제품 설명회 시 식음료 등 제공 ▲임상시험·시판 후 조사비용 지원 등을 한 경우 누가, 언제,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나 제공했는지 작성하고 증빙서류를 5년 간 보관해야 한다.

보건복지부는 기업의 투명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 및 의약품 거래의 중요성을 고려하더라도 선샤인액트가 충분한 시행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제약업계 중 본격적으로 선샤인액트 대비에 돌입한 곳은 ▲녹십자 ▲동아제약 ▲유한양행 ▲한독 ▲한미약품 등이다.

한편 일각에선 선샤인액트가 제약사들의 영업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내수 영업만 치중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신약 개발 및 수출이 강화됨에 따라 큰 타격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시선도 공존하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비슷한 여건 속에서도 제약업계는 성장과 고용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면서 후자의 시선에 더욱 무게가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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