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계속해서 이민자 추방 방지법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진은 다카 폐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소녀.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신청서 접수는 재개됐지만 다카(DACA)의 앞날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작년 9월 법무부에 의해 일시 중단됐던 이 불법체류 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은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이 폐지 보류 결정을 내리면서 당장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백악관과 공화당은 여전히 다카 프로그램의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다.

◇ 다카와 80만 불법체류자의 운명은 어디로

현재 다카의 수혜를 받아 추방이 유예된 이민자는 약 80만명 가량으로 추정되며, 근로 또는 학업을 위해 임시허가증을 발급받은 인구를 합하면 이보다도 훨씬 많다. 재판을 맡은 윌리엄 알서프 판사는 다카 프로그램이 아무런 대안 없이 폐지될 경우 이 청년들에게 막대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민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선고 당시 판결 내용에 대해 ‘언어도단’이라는 표현을 썼던 트럼프 대통령은 며칠 뒤 다시 다카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번엔 민주당이 타깃이었다. 14일(현지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다카는 그것을 절실히 원하지 않는 민주당원들 때문에 제 명을 다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다카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군대에서 돈을 빼내가길 원할 뿐이다”고 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 추방유예 프로그램과 미국의 안보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백악관이 다카 프로그램을 존속시키는 대신 민주당이 국경장벽 건설에 필요한 예산 책정에 동의하는 ‘빅딜’은 오래 전부터 논의돼온 가능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에게 같은 제안을 전달했으며, “조건 없는 다카 법안에도 찬성할 수 있느냐”는 다이앤 파인스타인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가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의 만류로 답변을 취소하기도 했다.

CNN에 따르면 의회는 현재 약 네 종류의 이민법 개편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중이다. 15년 이상 거주한 다카 수혜자에게 시민권을 발급하는 법안부터 3년마다 의회의 비자 갱신을 받을 것을 요구한 법안까지 그 특징도 다양하다. 다만 아직까진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수정안은 없다.

◇ 워싱턴 흔든 ‘똥통’ 논란… 품격도, 역사도 잊었다

이민법 개정을 위해 구성됐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초당적 협의체는 현재 난관에 봉착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여야 의원들과 함께 해당 문제를 논의하던 자리에서 미국으로 이민자들을 보내는 아프리카의 빈곤국들을 ‘똥통(shithole)같은 나라들’이라고 지칭했다는 사실이 회의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55개 아프리카 국가들의 모임인 ‘아프리카 연합(AU)’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공식 결의안을 통과시켰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원들은 해당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중이다.

표현의 진위여부와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수뇌부가 더 이상 이민자의 유입을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르웨이와 같은 선진국 출신들이 미국 영주권을 신청하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직접 트위터에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가 더 부강하고 위대해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미국을 찾길 바란다”고 쓰기도 했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주장하고 있는 것 또한 추첨제로 운영되는 현행 이민자제도를 폐지하고 심사를 통해 더 우수한 인력만을 승인하는 ‘메리트 시스템’이다.

반면 민주당과 다카 폐지에 반대하는 기업계, 시민단체들은 미국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광대한 영토를 개척할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미국은 그리 길지 않은 자국의 역사 대부분동안 이주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들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미국의 제조업을 뒷받침했다. 19세기 중반 주린 배를 안고 뉴욕 항구에 발을 디뎠던 이민자들 중에는 앤드류 카네기와 조셉 퓰리처 등 근현대사에 이름을 남긴 거인들도 있었다. 메리트 시스템이 과연 이 원석들을 가려낼 능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 본인조차 이 사례에 이름을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 트럼프는 16살 때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왔으며, 뉴욕 시에서 이발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트럼프 일가가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로 떠오른 것은 그의 아들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아버지인 프레드 트럼프 때부터다. 대만 태생의 테드 리유 캘리포니아 하원의원(민주당)은 15일 트위터를 통해 “나는 (독일인이었던) 당신의 할아버지가 입국 승인을 받았던 것을 비난하는 의미에서 메리트 시스템에 찬성하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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