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성명에 ‘분노’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으로서 말해서는 안 될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고, 정치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전달했다.

한국당을 중심으로 야권은 즉각 논평을 내고 문 대통령의 발언을 거세게 비판했다. 장제원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좌파 정부에 대해서도 공정한 수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고, 경기도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홍준표 대표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그런 말을 했다면 이해하는데, 이 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이해 안 되는 행동”이라고 힐난했다.

◇ 예상됐던 야당의 반발 논평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동참했다. 이행자 국민의당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감정적으로 발끈해서는 안 된다”며 “전ㆍ현직 대통령의 썰전은 국민들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바른정당 권성주 대변인은 “분노를 표출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수사를 강화하라는 가이드라인으로 비쳐질 수 있다”면서 “공과 사를 가리고 신중하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통령의 성명에 문 대통령이 분노하고, 다시 정치권이 반발하면서 여론은 급속도로 ‘정쟁’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새다.

국정원 특활비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 <뉴시스>

‘정쟁’ 양상은 이명박 전 대통령 측과 자유한국당이 노린 측면이 있다. 과거 정부에 대한 수사가 ‘적폐·비위 척결’이 아닌, ‘정치보복’으로 비춰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정쟁’이 길어지면 국민적 피로감이 쌓이고 종국에는 수사동력 상실로 이어졌던 전례들이 적지 않다. 한국당은 초창기부터 ‘정치보복’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이 전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바레인 출국에 앞서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었다.

청와대는 이 같은 노림수를 이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정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되도록 검찰수사와 거리를 뒀고, 정책과 관련 없는 정치현안에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다. 필요한 경우 참모수준에서 최소한의 입장만을 전하는 정도였다. 이 전 대통령이 성명에 대해 이날 아침까지도 청와대는 “노코멘트”라는 입장을 내놨었다. 청와대가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던 이유다.

◇ “노코멘트” → “인내만 할 수 없다” 변화

청와대 내에서도 입장 수위를 놓고 일부 이견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소상공인 대책, 민주노총과의 만남, 일자리창출과 평창올림픽 등 청와대에서 강조하는 메시지가 정쟁에 함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이 직접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한 점에 대해 목소리가 높아졌고, 청와대 하명수사라는 식의 주장에 반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발언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았겠느냐”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다 인내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말을 일방에서 쏟아내고 있는데 정부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언제까지 인내만 하는 것도 무책임하다”며 “이 전 대통령의 발언이 국민 편 가르기를 하는 사안이 여럿 있었지만 참았는데 이번에는 금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검찰을 향한 메시지라는 해석도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의 반발에 위축되지 말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라는 것. 최근 검찰은 김희중 전 청와대 부속실장으로부터 국정원 특수활동비 관련 중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희중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전날 이 전 대통령이 성명을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두언 전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 전 부속실장이 (이 전 대통령의) 집사 중의 집사, 성골집사”라며 “김 전 실장이 만약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 했다면 엄청난 카드를 검찰이 쥐고 있다고 봐야 된다. 게임이 끝난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이 지금 굉장히 급하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니까 본인의 마음이 굉장히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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