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이 17일 자신의 입장문을 발표한 뒤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기자회견은 열었지만 기자의 질문은 받지 않겠다. 17일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30분께 자신의 사무실이 위치한 삼성동 한 건물에서 입장을 발표했다. 장소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일부 취재진만 내부 취재를 허용했지만, 그마저도 질문은 받지 않는 형식이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기자회견이 아니라 성명서를 낭독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럴 거면 기자를 왜 불렀느냐”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이나 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은 3분 만에 종료됐다. 이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소식이 통보됐을 때부터 삼성동 건물을 에워싸고 대기했던 취재진은 이 전 대통령이 건물 밖으로 나오기까지 기다렸다. 직접 묻기 위해서였다. 현장에 있었던 한 기자는 “어차피 아무 말도 안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전했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들이 경호를 이유로 취재진을 몰아내면서 잠깐의 충돌도 있었다.

“건물 뒷문이 있는 것 아니냐” “뒷문으로 나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한(?) 예감 속에서 약 한 시간 만에 이 전 대통령이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에게 물어라 라고 하셨는데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의미냐’ ‘특활비 상납에 대해 보고받은 적 있으시냐’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 전 대통령은 말없이 취재진을 흘끗 쳐다본 뒤 차량을 타고 떠났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취재진 사이에서는 아쉬움과 분노가 섞인 탄성이 나왔다.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화제였다. 통상 갖는 기자회견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문 대통령이 직접 기자를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질문내용에 대한 사전 협의도 없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질문 분야를 나누고 할당했지만 이번엔 그조차도 하지 않았다. 기자와 접촉이 많은 국민소통수석이나 대변인이 아닌 문 대통령의 직접 지명이었기 때문에 선택된 언론사의 폭도 넓었다.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정치권에는 ‘문재인식 기자회견’ 열풍이 불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비슷한 방식으로 신년 기자회견을 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이 같은 방식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통합을 선언하는 ‘중대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직접 지명해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앞에 열거한 사례들은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측근들이 구속되고 재임 시절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불법으로 상납 받았다는 의혹, 다스 비자금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이 전 대통령이 기자들의 자유질문을 받기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찰 수사 중인 내용과 겹치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이유들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게 들린다. 이 전 대통령은 2009년 1월 집권 2년차를 맞아 기자회견 대신 ‘신년 국정연설’을 했었다. 주력 사업인 4대강 사업을 적극 홍보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후에 있을 취임 1주년 기자회견과 중복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은 열리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650자 가량의 짧은 성명서를 낭독하는 3분여 동안 기침을 여섯 차례 했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기침을 하느라 중간 부분에서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성명서 낭독 직전, 수시로 코 부분을 만지기도 해 요즘 유행인 독감에 걸린 것 아니냐는 추측도 일었다.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는 관측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 측 관계자는 “목이 메이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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