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책으로 대한민국의 건강이 흔들리는데 참담함을 느낍니다.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이 보수를 괴멸시키고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는 것이 저의 오늘의 입장입니다.”

누구 말인지 알겠지?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검찰 조사에서 입을 열기 시작하자 다급해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부랴부랴 기자회견을 열어 한 말이야. 그동안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해명이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참회는 없고, 이 모든 게 다 정치보복이라니… 이분도 지금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네. 4대강, 자원외교, 제2롯데월드 의혹과 친인척 비리 등으로 나라가 들끓던 2011년 9월에 “우리는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큰소리칠 때처럼 지금도 돈과 권력에 취해 윤리 의식이 마비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러니 국회의원 시절부터 15년 동안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부하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분은 그분밖에 없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최선”이라고 충언을 할 수밖에. 나도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MB 같은 사람은 예외일세. 그가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하는 것을 보면 국민들을 바보로 보는 것 같아서 화가 나고 미워져. 아마 MB만큼 우리 사회의 기본 윤리도덕을 무시하고 우리말의 가치를 떨어뜨린 대통령도 없을 거야.

위장전입,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선거법 위반, 탈세를 위한 아들딸 위장 취업, 부동산 투기, 마사지 걸은 못 생길수록 서비스가 좋다는 성희롱 발언, BBK 주가조작과 (주)다스의 차명 보유 의혹 등 많은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왜 MB를 대통령으로 선택했을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경제·정치·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니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줄 ‘실용적인’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용서한 거지. 성공한 사람에 대한 부러움도 작용했고. 게다가 임기 내에 747공약(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불 달성, 세계 7대 경제대국 진입)을 기필코 달성하여 대한민국과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장담하는데 귀가 솔깃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되돌아보면 국민을 속인 허황한 공약(空約)이었지만 당시에는 그 공약(公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꽤 많았어.

쓸데없는 가정이지만, 1970~80년대였다면 MB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적어도 9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비윤리적이고 비성찰적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네. 부정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았어. 그래서 부동산 투기란 말은 있어도 ‘재테크’라는 말은 아직 없었지. 부동산으로 졸부가 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1997년 말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세상이 급격하게 변해버렸네. 몇 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돈만 아는 속물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으로 타락해버린 거야.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아무런 저항 없이 덕담(?)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어버린 거지. 그래서 MB 같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배금주의자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네.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 스님이 이명박 시대의 정신을 '몰염치, 파렴치, 후안무치'로 규정했던 것은 옳았어. 우리 사회에서 수오지심이라는 덕목이 상류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게 그때부터야. 그 연장선에서 박근혜 같은 무능한 대통령도 나올 수 있었던 거고.

“평범한 백성은 상대방의 재산이 자신보다 열 배 많으면 자신을 낮추고, 백 배 많으면 두려워하고, 천 배 많으면 시키는 일을 하고, 만 배 많으면 노예가 된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다.” 『사기』「화식열전」에 나오는 말일세. 돈의 힘을 경계하는 말이야. 자주 하는 말이지만 돈을 중시하고 부자를 부러워하면 결국 부자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네. 이 땅에 다시는 MB나 박근혜 같은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이 최고지도자로 선출되는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에 깊게 스며든 배금주의와 물질주의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수밖에 없어. 돈만 아는 ‘짐승들’이 득실거리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보다는 효율성과 이윤을 앞세우는 ‘지옥’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반성하고 재규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네.

미국의 초절주의 철학자 겸 시인이었던 에머슨이 말하는 소박하지만 사람 냄새가 물신 풍기는 ‘성공’개념을 함께 음미하면서 마치고자 하네.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서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 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남은 인생 성공하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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