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한 북한 여성의 남한 방문이 여론을 떠들썩하게 달궜다.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직함으로 서울과 강릉을 찾은 현송월이다.

현송월은 1박2일의 방남 일정 동안 가는 곳마다 화제를 만들었다.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일거수일투족에 이목이 집중됐고, TV방송은 실시간 중계하다시피하며 그의 동선을 전했다. 현송월이 입고 나온 코트나 모피 목도리 뿐 아니라, 신발과 헤어스타일 등에 대한 분석까지 제기되자 일각에서 “북한 악단장급 일행의 방문에 너무 호들갑 떠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서울~강릉 간 KTX 특별 열차 편성이나 경찰 병력을 동원한 차량통제 및 의전은 과잉이란 비판도 있었다. 언론의 취재열기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시선도 쏟아졌다.

현송월의 남한 방문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올 북한 공연단의 준비상황을 살펴보기 위한 데 주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막혔던 남북 간 인적교류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뚫리는 돌파구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다.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막혔던 경의선 육로를 통해 왔다는 점도 상징적 의미가 있다. 여기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의 염문설까지 나돌았던 인물이란 점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 요인은 충분했다.
 
북한의 ‘신비주의’ 전략도 한몫 했다. 취재열기와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도 현송월은 방남 소감이나 공연장 방문 느낌 등에 대해 함구했다. 가끔 옅은 미소를 보이거나 우리 관계자들에게 “강릉 사람들 친절한 것 같다”는 식의 인상을 남겼을 뿐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에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실무적인 점검을 진행하고 싶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전해왔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에는 자칫 설화(舌禍)를 자초해 부담을 떠안게 되거나 김정은이 구상 중인 평창 겨울올림픽 북측 참가 문제에 차질이 생길지 모른다는 우려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또 현송월이 자신에게 쏠린 부담을 의식해 일부러 차단벽을 친 것이란 해석도 제기된다.  

현송월의 남한 방문을 시작으로 북한 대표단의 평창행을 위한 준비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현송월 일행이 돌아간 이튿날인 23일에는 남북한의 금강산 합동문화 행사와 마식령 스키장에서의 남북 스키선수 공동 훈련 문제를 점검할 우리 선발대가 금강산을 향했다. 이 선발대가 2박3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북측 선발대가 남측에 내려와 경기장 시설과 숙소 등을 들러보는 등 빡빡한 일정이 이어지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을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어 나가려는 우리 정부의 준비 작업은 마무리 단계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이 같은 해빙무드 속에서 불거진 북한의 거친 대남비방과 돌출행동이다. 현송월 등 점검단의 파견을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파견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일정을 재개하는 방식은 남북 간의 신뢰 뿐 아니라 안정적인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작업을 방해하는 행위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칭해 입에 담기 힘든 비방을 퍼붓고, 우리 사회를 이간하려는 선동을 펼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나서고, 이를 대승적 견지에서 수용한 우리 국민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린 언동이라는 점에서다.

사실 북한 대표단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그는 지난 1일 북한TV로 중계된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철 올림픽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중단했던 남북 직통전화 재가동 조치를 취했고, 고위급 당국대화가 열려 북한의 평창행 등 3개항에 합의했다.

북한의 이런 전격적인 제안과 평창행 성사를 두고 우리 사회에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김정은이 대북제재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워싱턴을 향해서는 ‘북한=핵 보유국’이란 메시지를 던졌고, 서울 쪽으로는 ‘올림픽=평화’라는 시그널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미 공조를 와해시키고 한국 내부에 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란 분석도 대두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이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단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은 불씨로 남았다. 그가 “외세와의 모든 핵전쟁 연습을 그만둬야 한다”며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것을 두고 올림픽을 계기로 대남 평화공세를 전개하고, 올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훈련 재개에 영향을 미치려는 속셈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절박감에서 북한의 평창 참가를 수용했다. 우리 사회에서 이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적지 않다는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와 남북 단일팀 구성, 공동 입장 등을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잔칫상이 제사상이  될 수 있다”며 위협하고 대통령에게까지 극렬한 비방을 퍼붓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평창 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결정한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와 평판까지 실추시키는 일이란 점을 북한 측 고위 인사들도 깨달아야 한다.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둘러싼 북한 측의 걱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이 각별한 관심을 보인데다 남한 사회의 눈길이 쏠려있는 북한 대표단의 남한 파견 임무를 성공적으로 치러내야 한다는 점에서다. ‘남조선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주민들의 동요 문제도 고심거리 일 수 있다. 자칫 “남쪽에서는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열리는 데 우리는 뭔가”라는 쪽으로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이 번지면 낭패란 점에서다. 그래도 터무니없는 대남비방이나 억지 부리기는 곤란하다.

이제 평창에 올 북한 대표단은 한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됐다.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점철됐던 호전적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좋은 계기다. 물론 국제사회를 겁박한 군사도발의 대가인 대북제재 등은 별도의 채널을 통해 다뤄져야겠지만 인류 평화를 위한 제전인 올림픽에서 선보일 북한 측의 말과 행동은 한국과 국제사회의 여론을 좌우할 수 있다. 북한이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남행보와 국제 감각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줄 첫 무대가 바로 평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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