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법제사법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폐지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카드를 꺼내들었다. 법사위가 사실상 ‘상원’ 노릇을 하며 각 상임위에서 논의를 마친 법안을 마음대로 미루거나 본래의 입법 취지를 훼손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민주당의 ‘법사위 힘빼기’ 카드가 실제로 먹힐 가능성은 낮다.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를 뒷받침해야 하는 여당이 제1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법사위 대신 각 상임위가 소관 법률안의 체계·자구 심사를 자체적으로 하도록 해 입법 병목 현상을 방지하고 상임위 심사와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규정한 내용이 담긴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우 원내대표는 “체계·자구 심사는 현재 주요국 의회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며 “국회에 법률 전문가가 드물던 시절인 1951년 제2대 국회에서 만들어진 규정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의원 106명이 서명했다.

현 법사위원장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권 위원장은 23일 한국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기능을 폐지하는 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것은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며 “집권여당이 국회를 통합과 조정의 장이 아닌 일방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독재적이고 오만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권 위원장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은 본회의에서 심사해왔지만 비효율성 때문에 법사위에 권한을 부여한 이래 66년간 유지해 왔다”며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도 이 권리를 이용해 정부·여당의 입법시도를 노골적으로 막은 것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체계·자구 심사권이 필요하다고 하다가 여당이 된 지금 폐지하자고 하는 것은 후안무치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이 실제로 법사위의 기능 축소로 이어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일단 국회법 개정을 위해서는 소관 상임위인 국회 운영위원회를 통과해야 한다. 현 운영위원장은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다. 운영위를 통과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결국은 법사위에서 최종 심사를 거쳐야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다. 권성동 위원장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는 분석이 나온다.

때문에 우 원내대표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 카드는 현실성보다는 상징성에 무게를 뒀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할 여러 민생법안을 처리해야 할 책무를 떠안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속 대책으로 상가임대차 계약갱신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특별법 등이다. 이외에도 개헌과 선거구 개편 등 현안이 산적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날을 세우고 있는 한국당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를 내놓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사위가 법안 처리에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켜 여론의 비판을 고스란히 한국당에 전가하고 한국당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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