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훌륭한 하키 선수는 퍽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만, 위대한 하키 선수는 퍽이 향하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우상인 웨인 그레츠키의 말입니다. 미래학자 피터 힌센은 이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2.0에 반응하고, 2.5에 반응하고, 3.0에 반응하기보다는 미래 자체를 더 멀리 내다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래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까닭이죠. 비트코인을 둘러싼 최근 논쟁은 누가 더 멀리 미래를 내다보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만 놓고 보면 화폐논쟁에 함몰될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통화 등 용어들이 뒤섞인 이유지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발상도 그렇습니다. 비트코인이 추구한 퍼블릭 플랫폼을 손쉽게 프라이빗 플랫폼으로 환원하는 인식의 오류가 난무합니다. 이는 이미 권력을 독점한 대기업은 선하고 안전하다는 기존 권력의 인식이 새로운 도전을 묵살하는 경우입니다. 새로운 질문을 거절하고 익숙한 정답만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거래소를 폐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비트코인을 사기라고 규정하고 투자자들을 투기꾼, 도박꾼 취급을 했습니다. 오만한 태도입니다. 아날로그 세계에서 디지털 세계로 이주한 디지털 이민자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새로운 현상을 범죄시하고 있습니다.

퍽이 향하는 방향을 좇는 사람들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품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퍽만 좇는 사람들은 기득권에 대한 위협을 참을 수 없어합니다. 그들에게 겸손의 거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최근 한국 권력자들의 담론은 디지털 원주민들의 희망을 짓밟고 있습니다.

거래소에 대한 규제와 과세정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최근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창립총회를 갖고 자율규제 방침을 밝혔습니다. 좋은 일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도전이 기존 사회의 관습과 제도를 만났을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갈등을 풀어야 합니다. 특히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는 상황도 방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새로움을 대하는 방식이 기존 권력자의 잣대로 적절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없이 폭력적으로 이루어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산업은 질식하고, 새로운 세대의 꿈은 좌절되며, 결국 국가경제에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사잡지 <타임>의 1993년 4월호 표지는 ‘정보고속도로’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1994년 7월에 <타임>은 ‘인터넷이라는 이상한 신세계-사이버 세상의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투’라는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인터넷이 세상에 공인된 순간입니다. 이듬해 3월엔 ‘사이버공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인터넷이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되는데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나온 지 12년 만인 2006년 <타임> 표지는 바로 “당신(You)”이었습니다. 인터넷의 세계는 아주 짧은 시간에 당신의 세계가 됐습니다.

당시에도 버블이 심각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비이성적 경기과열에 대한 선언’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단 4년 만에 나스닥 지수는 4배 이상 폭등합니다. 새로운 기술의 1차 타깃은 소비자가 아니라 투자자입니다. 베네수엘라 사상가인 카를로타 페레즈의 기술혁명 5단계, 즉 침투기-열광기-붕괴기-황금기-성숙기를 열거하지 않아도 기술혁명이 초래한 버블을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비트코인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문제를 두고 2030세대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세계는 지금 되돌릴 수 없는 불평등 구조를 양산한 기득권 엘리트체제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성격은 다르지만 트럼프, 마크롱의 당선은 기존 체제에 대한 광범한 저항을 표현합니다.

2030 세대는 가장 부유하게 태어나 가장 가난하게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희망보다는 절망에 한 발 더 가깝습니다. 50대 이상의 디지털 이민자들은 장기집권을 꿈꿉니다. 2030 세대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기술혁명이 낳을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블록체인의 핵심철학인 ‘탈중앙화(decentralization)’가 권력지형 변화의 방향일 것입니다.

한국은 박근혜 탄핵이라는 비상시기를 경유했습니다. 기득권 엘리트 체제의 한 축을 담당하던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정의로운 세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절망, 여성차별의 구조로 볼 때 이것은 가짜 변화일 수도 있습니다. 적폐청산은 매우 중요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부에 와 닿는 삶의 변화는 거의 없습니다.

권력의 중추인 586들은 뭔가 잘못된 이 세계에 책임이 없을까요? 유시민 작가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실세였고,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낸 인물입니다. 그가 어느 날 정의라는 이름으로 젊은 세대의 새로운 움직임을 비난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의와 촛불을 독점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2030에게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기는커녕 힘겹게 쌓아올린 계단을 걷어차려고 합니다. 비트코인과 아이스하키팀을 계기로 폭발한 분노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얼마 전에 영화 <1987>을 봤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위대한 역사를 조폭영화 컨벤션에 우겨넣은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상업주의의 도가 지나쳤습니다. 반공경찰간부가 주인공이고 사상범에겐 유독 가혹했던 한 교도관이 무슨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묘사됐습니다. 이한열 열사는 너무 순진했고, 여성의 역할은 가혹할 정도로 작았습니다. 저는 고대 앞 마마집에서 처음 만난 여자 선배들의 신념과 용기에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7년의 한복판을 치열하게 지내왔던 제게 무언가 부끄러움이 내려앉았습니다. 우리는 단지 직선제를 위해 싸운 게 아닙니다. 도시빈민운동으로 사회를 알았고,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저항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자유와 평등을 향한 열정과 신념으로 만들어낸 6월항쟁을 상업주의로 도배했습니다. 책임의식도, 미래세대에 대한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영화나 비트코인 논란을 보면서 불편했던 것은 이른바 운동권 세대가 부와 권력을 넘어 이제 미래마저 독점하려는 욕망을 도처에서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6월항쟁 세대는 기득권의 핵심이 됐습니다.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정부에서도 모든 곳에서 요직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세상은 어떻습니까? 청년 자살률 1위, 출산률 꼴찌가 상징하는 이 나라의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외면합니다.

청년과 여성이 권력에 접근하는 길을 과감히 열어야 합니다. 권력과 미디어를 독점하고 새로운 세대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것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입니다. 비트코인과 아이스하키팀 구성을 둘러싼 2030의 분노는 단지 그 현상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퍽이 향하는 방향은 권력이동에 관한 것입니다. 나쁜 세계를 만든 사람들이 계속 권력을 독점하려는 뚜렷한 경향성에 대한 저항입니다.

최근 지방선거와 관련해 이재명 성남시장이 2인 선거구 문제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2인만 뽑으면 거대양당,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의원만 당선되게 됩니다. 이재명 시장의 말대로 ‘살인자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를 최소한 4인 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그래야 청년, 여성 등 무소속도 당선될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지방의회뿐 아니라 국회의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지역구에서 한 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의 독점구조를 영속화하는 나쁜 제도입니다. 그런데 4인 선거구제 도입을 자유한국당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도 반대한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새로운 도전의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길을 여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해쉬태그 ‘미 투 캠페인’에서 보듯이 ‘영향력의 권력이동’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이제 운동권 세대들은 현실권력의 이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청년과 여성이 중심이 된 디지털 권력이동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비트코인이 시작한, 디지털 국경에서 벌어지는 탈중앙화 전투는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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