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맹점에 갑질을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지난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후 웃으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멀지 않은 과거에 대기업 총수들의 형사재판에서 공식처럼 나왔던 형량이다. 이번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다. ‘역대급 갑질’ 논란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우현(70) 전 MP그룹 회장은 지난달 23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 정확히는 미소를 지으며 법원을 나왔다. 그러나 가맹본부의 횡포에 고통 받던 점주들은 허탈감과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맹점주뿐만 아니다. 시민단체는 물론 법조계에서도 이번 판결을 두고 말들이 나오고 있다. 재판부가 대중의 상식 또는 법의 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인 해석을 통해 점주들을 두 번 울렸다는 지적이다. 검찰도 최근 항소장을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정 전 회장의 판결이 향후 가맹점 갑질 사건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무죄? 집행유예? 혼란에서 분노로 바뀐 판결

정 전 회장의 1심 선고가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도대체 결과가 뭐냐”는 반응들을 보였다. 어떤 기사는 ‘갑질 무죄’, 어떤 기사는 ‘집행유예 선고’라고 제목을 뽑으면서 나온 결과였다. 재판부는 정 전 회장이 친인척을 직원으로 허위 취업하게 하고 29억원 상당의 급여를 지급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또한 차명으로 운영한 가맹에 대한 상표권(7억6,000만원)을 면제하고, 이 가맹점에 파견된 직원들에 대한 급여 14억원을 청구하지 않는 방법으로 회사에 64억6,000만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인정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논란이 됐던 가맹점주들에 대한 ‘갑질’ 혐의는 대부분 무죄로 결론이 났다.

법원이 무죄로 판단한 부분은 ▲동생 회사를 치즈 유통 단계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중간유통 마진 횡령 혐의 ▲광고비로 지급하는 가맹금 유용 혐의 ▲전 가맹점주에 대한 보복 출점 및 업무 방해 혐의 등이다.

문제는 이에 대해 재판부가 납득하기 어려운 해석을 내놨다는 점이다. 재판부는 정 전 회장이 동생 회사를 치즈 유통 단계에 끼워 넣은 행위로 57억원의 이익을 얻은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동생 회사를 거치지 않고 치즈를 공급업체와 직거래로 받았을 경우에 미스터피자가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57억원에 대한 횡령도 무죄로 봤다.

또한 매달 점주들이 광고비로 지급하는 가맹금에 대해서도 “본사에 귀속되는 금액”이라며 “광고비가 목적과 용도를 정해 미스터피자에 위탁한 금액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가장 큰 논란 지점은 전 가맹점주에 대한 보복 출점 및 업무 방해 행위를 무죄로 판단한 것이다.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에는 미스터피자의 보복 출점 행위가 상세히 담겨있다. 최병민 전 미스터피자 대표는 정 전 회장에게 피해 가맹점주의 동향을 보고하고 “(해당 지점을) 초전박살 내겠다”라고 보고했다. <뉴시스>

◇ 치즈 공급 막고, “초전박살 내겠다” 보고에도 ‘무죄’

검찰이 제출한 공소장에는 미스터피자의 보복 출점 등의 행위가 상세히 담겨있었다. 미스터피자 측은 정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전 가맹점주가 운영하는 가게에 치즈를 공급하는 업체에 압력을 가했다. 또한 전 가맹점주 가게 인근에 본점을 차리고 두 달간 파격 할인행사를 벌였다. 최병민 전 미스터피자 대표는 정 전 회장에게 수시로 해당 가맹점주의 동향을 보고하고 “직영점을 만들어 조속히 오픈하고 해당 지점을 초전박살 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보고했다.

해당 점주는 결국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근에 개장한 미스터피자의 파격 할인행사에 손님이 줄고, 치즈 공급 업체로부터 실제로 거래가 중단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정황을 고려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보복 피해를 당한 점주와 거래하는 치즈 업체에게 미스터피자가 압력을 가한 것이 아닌 ‘부탁’을 했다고 봤다. 또한 피해 점주는 매장에서 피자를 먹는 곳이고, 새로 개장한 미스터피자 직영점은 배달 전문이라는 이유도 들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김남근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유통 마진을 줄이기 위해 직거래를 한다. 미스터피자도 지금은 직거래를 하고 있다”면서 “법원에서도 동생에 대한 부당지원행위라고 인정은 해놓고도, 그게 ‘손해인지는 단정할 수 없다’는 애매한 판단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데다 점주들은 정 전 회장의 동생 회사에서 유통 가격이 더 붙은 가격으로 치즈를 강제로 구입해왔다”면서 “손해가 아니라면, 아닌 이유를 설명해줘야 하는데 ‘단정할 수 없다’는 식의 판단은 설득력도 떨어지고 지나친 입증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보복 출점 혐의에 대해서도 “미스터피자는 원래 있던 가맹점에 점주가 나가니까 직영점으로 만들었다고 하고 있지만 그 이외 정황들이 법원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거대 기업이 치즈 공급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해당 점주에게 치즈를 공급하지 말라고 하는데 누가 그것을 단순 부탁으로 듣겠는가”라고 되물었다.

◇ 시민단체 “사법부, 가맹거래사업 이해 부족해”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법부를 통한 불공정거래 개선에 한계가 드러났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형식논리에 빠져 거래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법 위반에 대한 상응한 책임에 대한 기대를 져 버린 판결”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수백명의 점주들이 218일 동안 농성을 하는 등의 고통을 받고, 젊은 한 사람이 생을 포기할 만큼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렸던 피해는 회복 될 수 없다”면서 “그럼에도 정 회장은 명백히 유죄로 인정된 부분마저도 사실관계를 다투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월 30일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와 참여연대, 경제민주화네트워크,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우현 전 회장의 1심 판결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참여연대>

특히 해당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다른 가맹기업 소송에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정위가 법 위반에 대해 검찰에 고발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정 전 회장처럼 형사 소송까지 가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홍진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교육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친인척 허위 취업 등은 점주들과 바로 맞닿는 부분은 아니다. 때문에 광고비 유용 및 갑질 부분에서 유의미한 판단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상당히 미온적인 판결이 나와 아쉽다”면서 “특히 광고비는 가맹거래법상 광고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정해져있음에도, 법원이 용도의 정함이 없이 본사에 귀속되는 비용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큰 문제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이번 판결이 대기업 오너 봐주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재판부가 “토종 피자기업을 살려줘야 한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집행유예가 가능한 형량이 3년이다 보니 이번에도 그런 비난을 받는 것 같다”면서 “법원이 인정한 부당이득금액만 수십억원이고, 횡령 방식도 허위 취업 등 죄질이 좋지 않은 경우다. 만약 작은 중소기업 사장이었다면 집행유예가 선고됐을지 의문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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