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현상은 일단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가상화폐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뜨겁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블록체인이라는 전문용어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가상화폐 광풍현상이 원인이다. 최근 열기가 다소 수그러들고 가상화폐 시세도 폭락하면서 광풍은 일단 멈췄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았다. 높은 유동성과 낮은 거래비용, 국가의 벽을 넘어선 자유로운 거래, 이론상 완벽한 거래장부와 보안 등의 이점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투기적 광풍이 지나간 만큼, 이제는 가상화폐와 블록체인의 바람직한 규제와 발전방향을 원론에서부터 차분하게 다시 시작해야할 때다.

사실 도박성 투기를 떼놓고 보면, 블록체인과 이에 기반한 가상화폐는 기존 세계질서에 대한 혁명적 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가가 통용력을 보증하는 중앙통제식 화폐금융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자발적 약속에 의한 가치부여와 거래가 시도됐다는 점에서다. 여전히 높은 국가 간 장벽을 한 번에 뛰어넘었던 셈이다.

◇ 기존 국가질서 분류에 없는 ‘새로운 것’의 등장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가상화폐 등장의 의의는 작지 않다. 가상화폐라는 용어로 불리지만 기존의 법적 ‘정의’에 포괄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어떤 것’이라는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교환의 매개물이라는 점에서 금전과 비슷하지만, 특정한 발행주체가 없고 전자화된 정보형태로만 존재해 금전으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주요국가의 법적 시선 및 대응방향

그렇다고 특정 재화나 별도의 권리에 한정한 상품권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채굴’ 등의 용어를 사용해 금과 비교하는 견해도 있지만, 전자적 정보에 불과해 그 자체의 내재적 가치를 가진 ‘물건’으로 분류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약정에 의해서 권리가 성립하는 금융투자상품이라고 보기에는 더더욱 어렵다. 가상통화에 대해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법적 ‘정의’가 우선돼야 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상화폐에 대한 법적 정의를 분명히 한 국가는 없다. 일부 국가들이 나름의 법적 분류를 해놓고 있으나 그마저도 공통분모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가상화폐 거래가 활발한 미국의 경우 일반상품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정의에 따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가상화폐가격을 바탕으로 한 옵션 및 선물상품 출시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기도 했다. 과세방향 역시 재산적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취급해 소득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 불법적 자금흐름 차단과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

가상화폐에 대해 가장 온건한 일본은 일종의 ‘불태환 화폐’로 보고 화폐의 기능을 일부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가상화폐 구입을 ‘환전’ 성격으로 보고 소비세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대신 환차익이 발생했을 때는 포괄 소득에 산입해 과세를 한다. 다만 오해를 하지 말아야할 것은 가상화폐를 법정화폐로 인정했다거나 결제수단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때 마치 일본이 가상화폐를 공식 인정한 것처럼 호도돼 우리 거래시장에 광풍을 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가상화폐를 보는 관점은 달랐지만 규제의 방향성은 불법적 자금흐름 차단과 자금세탁 방지로 비슷했다. 자발적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거래라는 태생적 특성에 따라 가상화폐는 불법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적지 않다. 국가의 중앙통제나 감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부터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이용한 랜섬웨어, 마약거래 사건들이 왕왕 있었다. 실크로드 사건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를 중심으로 열띤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법적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물론 아직까지 구체적인 법적 방향성이 드러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제시하는 규제방향은 미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불법자금흐름 차단과 자금세탁 방지 목적이 크다. 특히 실명제와 은행 신규거래 금지 조치는 자금흐름 감시와 함께 광풍현상을 차단하기 위한 우리나라만의 규제로도 볼 수 있다. 다만 가상화폐 거래는 국가 간 장벽을 초월하기 때문에 규제 구축에 있어 국제적 공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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