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정책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연설비서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會當凌絶頂一覽衆山(회당능절정일람중산)”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뭇 산들의 작은 모습을 보리라.”
중국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미국의 부시대통령과의 외교적 만남에서, 미국이 자신에게 결례를 한 것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낸 말이다.

중국 전국시대의 강국이었던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약한 등나라가 위치했는데, 등나라는 두 나라의 사이에서 오랫동안 괴로움을 당했다. 어느 날 맹자가 등나라에 갔을 때, 등나라 임금 문공이 그에게 “제와 초 사이에서 등나라는 어찌해야 하느냐”고 묻자, 맹자가 답하길, “비굴하게 강국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백성들과 함께 나라를 지켜야 하며, 그렇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떠나라”고 말했다. 두 틈바구니에 낀 등나라의 신세를 빗대어 ‘간어제초(間於濟楚)’라는 사자성어가 생겨났다. 그만큼 국가와 국가 간의 사이에는 각 나라의 크기나 국력에 상관없이 당당하고 대등하게 외교가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7세기 동북아시아.
당시, 당(唐)과 고구려, 신라와 백제․ 왜(倭)등 동북아의 많은 국가들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이때, 신라는 그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운명을 개척하여 삼국을 통일했다. 이것은 훗날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가,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마주 앉아 천하의 득실을 논하고, 왜의 권력자인 중대형을 설득하고, 당태종과 당당히 협상을 이끈 외교의 승리였다.

반면,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는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외교정책을 펼침으로써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번의 전쟁 참화를 자초했다. 구한말에는 청ㆍ러시아ㆍ일본 등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다 결국 일제 치하의 치욕을 겪었다.

우리민족은 열강들에게 둘러싸여 있기에, 역사이래로 ‘자강(自强)’과 ‘세력균형 외교’는 숙명이었다. 세력균형 외교에서의 실패는 어김없이 불행한 결과를 가져왔고, 외교에서의 세력균형의 성공은 우리 역사번영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어떤 외교를 하고 있는가.
지난 1월 30일에는 차기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됐던,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가 낙마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낙마의 주된 이유는 빅터 차가, 트럼프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고려중인 제한적 예방타격인 ‘코피(Bloody nose)작전’에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일로, 미국이 훨씬 더 진지하게 한국을 배제한 군사옵션을 고려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방향을 잃어 가고 있다. ‘사드보복’, ‘한한령’으로 냉랭해진 중국과의 관계는 지난 한국 기자폭행사건 이후로 관계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강하게 항의하지도 않았다.

2012년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산을 만나면 길을 뚫고 강을 만나면 다리를 세워라(逢山开路, 遇水搭桥).” 시 주석은 이 말을 통해 중국 변화 의지에 대한 확신을 내비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 사이에서 길을 잃은 우리가 한번 더 깊이 새겨 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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