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 칼럼니스트

서울 성북구 성북동 외교관단지로 가다보면, 성대 후문과 감사원으로 넘어가는 길에 우정의 공원이 있다. 그 옆에는 삼복이 아니더라도 늘 인산인해를 이루는 누룽지 백숙집이 있다. 메밀전과 푸짐한 닭백숙과 누룽지죽으로 그야말로 쭉 대박이 나고 있는 곳이다. 왠지 닭고기 냄새가 날 것 같은 곳. 하지만 가게 문을 닫고 나오면 건물 주변에는 오히려 ‘커피향’이 은은히 난다. 3층에 자리잡은 음악감상실 리홀뮤직갤러리가 있기 때문이다.

‘Rheehall’의 ‘Rhee’는 리우식 관장의 명함을 보니, 성씨 ‘리’를 어렵게 영어로 표기한 것인가 보다. 리홀뮤직갤러리 리 관장은 중학교를 마치고 고향인 경기도 광주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역 부근을 걷다가 우연히 내린 비를 피해서 들어간 처마. 그 처마를 가진 인쇄소에 들어가 사모님께 넉살좋게 일을 배울 수 있게 해달라고 이른바 구직활동을 간절히 벌였다. 10대때부터 뮤지션 지망생이었던 그는 얼마안가 기타리스트 오디션에서 ‘박치’라는 소리를 들으며 떨어졌다. 큰 충격을 받아 뮤지션의 꿈을 접고 생활전선에 올인했다는 리 관장의 미소는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의 그것이었다. 오로지 인쇄 외길을 걸었다는 그가 이제 인생 1막2장을 연 것이다.

리홀뮤직갤러리에선 매니저이자 바리스타인 이도경 실장이 만들어주는 핸드드립커피를 음미하면서 지상 최고의 음질을 감상할 수 있다. <하도겸 칼럼니스트>

리관장은 용돈이 조금 생길 때마다 한두개씩 LP판을 모았다고 한다. 당장 LP판을 틀 턴테이블도 없지만 언젠가 여유가 오는 날이 있으면 즐기면서 듣겠다는 생각이었다. 20대에는 1년에 100∼200장을 모으다 경제력이 갖춰진 30대말부터 본격적으로 앨범을 수집하다보니 어느새 7만5천장이나 되었다. 얼마전에도 갤러리를 찾은 고객이 집에서 잘 안듣다며 클래식 CD판을 백여장을 기부했다. 입구에 전시하며 감사함을 표시하고 있는 리관장은 정리를 한 후에 일반인들에게도 듣게 할 작정이라고 한다.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시절부터 무려 반세기가 지난 2014년 3월 8일 개관되었다. 혼자만의 취미 방이었던 음악감상실 리홀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적어도 10억은 있어야 들을 수 있는 공간과 장비로 가능한 음향을 단돈 만원에 즐길 수 있다. 매니저이자 바리스타인 이도경 실장이 만들어주는 핸드드립커피를 음미하면서 지상 최고의 음질을 감상할 수 있으니, 정말 ‘만원의 행복’이란 말이 딱 맞는 곳이다. 커피값을 빼고 몇곡 신청한다면 ‘천원의 행복’이 여기에 있다.

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고 커피를 음미하며 최고의 음악감상시설을 완비한 이곳은 바로 음악마니아들의 이상향이자 천국일 것이다. <하도겸 칼럼니스트>

중견 인쇄업체 ㈜경림코퍼레이션 대표이사이기도 한 리관장은 돈이 없어서 최고의 음질을 즐길 수 없는 마니아들에게 어쩌면 ‘보시’ 아니, 자선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시를 읽으며 그림을 보고 커피를 음미하며 최고의 음악감상시설을 완비한 이곳은 바로 음악마니아들의 이상향이자 천국일 것이다. 빈티지 오디오-웨스턴 일렉트릭 15A, 25A혼, 알텍A2, 클링 필름 유로딘 빈티지 진공관 오디오 등이 갖춰져 있는 그곳. 방문자는 LP판의 오래된 노래를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선율로 아날로그적인 음악도 감상할 수 있다.

입구에 놓여진 쪽지에 신청곡을 적어 DJ 이실장에게 전하면 순서에 따라 빈티지 오디오 스피커를 통해 신청한 노래가 울려 퍼진다. 1987년에 출연했을 것 같은 음악애호가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화기애애하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소곤소곤 나눈다. 그 주변에 눈을 감고 음악에 심취해서 글쓰기도 잠시 잊어버린 7080사이에 ‘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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