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보일러의 2016년 CF. 귀뚜라미보일러는 2016년 9월 경주지진으로 지진 안전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자, 자사의 지진감지센서 기술을 강조하는 CF를 제작한 바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모처럼 포근한 주말 날씨가 찾아온 11일 새벽, 경북 포항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규모 4.7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의 86번째 여진이자 가장 큰 규모의 여진이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또 다시 공포에 떨어야했고 여러 피해가 발생했다.

이처럼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적잖은 규모의 지진이 잇따르고 있다. 2016년 9월에 발생한 경주지진은 관측 이래 최대 규모(5.8)였고, 지난해 11월 발생한 포항지진은 역대 2위(5.4)에 해당했다. 연평균 40~50회 정도였던 지진발생횟수는 최근 2년간 200회를 훌쩍 넘겼다. 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은 더 이상 우리에게 해당하지 않는 것이 됐다.

더욱 강해지고, 잦아진 지진은 관련업계에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건설 및 건축자재 업계에선 ‘내진기술’이 화두로 떠올랐고, 각종 재난대비 용품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 진도 7에도 안전한 KS인증… 지진감지센서는 정말 필요할까?

보일러업계 역시 지진과 밀접한 업계다. 가스 등을 사용하는 보일러의 특성상, 지진 피해를 입을 경우 화재나 폭발 등 심각한 2차 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귀뚜라미보일러는 국내 업계에서 유일하게 지진감지센서를 적용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진동이나 지진이 감지되면 보일러가 자동으로 작동을 멈춘다. 귀뚜라미보일러는 CF 등을 통해 이를 적극 강조하고 있다. 실제 경주지진 및 포항지진 당시, 귀뚜라미보일러가 지진을 감지하고 작동을 멈춘 것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비자입장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귀뚜라미보일러를 제외한 다른 회사의 제품은 지진에 대한 대비가 없는 것일까.

결론은 아니다. 보일러는 KS인증에 내진관련 기준이 포함돼있다. KS인증을 받으려면 진도 7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내진동성을 갖춰야 하고, 엄격한 검사를 통해 이를 확인한다. 진도 7은 사람이 서있기 어렵고, 일부 약한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수준이다.

보일러업계 관계자는 “KS인증에 내진관련 기준이 포함돼있다”며 “건물이 무너지는 수준의 지진이 아니라면 큰 문제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귀뚜라미보일러 제품. 2번에 해당하는 것이 지진감지센서다.

국내에서 보일러 제품을 판매하려면 반드시 KS인증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귀뚜라미보일러도 KS인증을 획득했다. 따라서 굳이 지진을 감지해 작동을 멈추지 않더라도, 상당한 규모의 지진까지는 안전성이 확보된 상태인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귀뚜라미보일러의 또 다른 특징이 작용한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귀뚜라미보일러는 다른 업체와 달리 ‘저탕식’을 고수하고 있다. 기름보일러가 주를 이루던 시절부터 이어진 방식이다. ‘저탕식’은 ‘순간식’과 달리 보일러 내부에 큰 물통이 들어간다. 한 보일러설치업자는 “아무래도 저탕식이 흔들림에 더 민감한 구조일 수밖에 없다. 물이 넘치거나 하면 고장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귀뚜라미보일러가 오래 전부터 지진감지기를 달아 온 것은 이러한 측면이 고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즉, 구조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가 거꾸로 강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귀뚜라미보일러 측의 설명은 다르다. 귀뚜라미보일러 관계자는 “보일러 자체는 큰 규모의 지진에도 안전할 수 있지만, 보일러와 연결된 연통, 배관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보일러가 계속 작동한다면 정말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진동이 감지됐을 때 우선은 작동을 멈추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지진감지센서를 적용한 이유가 ‘저탕식’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저탕식과 지진감지센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저탕식은 국내 환경에서 온수와 난방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 11일 강한 여진, 귀뚜라미보일러 문의는 20여건

경동나비엔이 지난 11일 여진 이후 홈페이지에 게시한 안내문.

가장 강한 포항지진 여진이 발생한 지난 11일, 귀뚜라미보일러로 걸려온 지진 관련 문의는 약 20여건이었다. 2016년 경주지진, 지난해 포항지진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준이다. 그만큼 지진의 규모와 피해가 적기도 했지만, 귀뚜라미보일러의 지진감지센서 기능이 많이 알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귀뚜라미보일러 관계자는 “지진으로 인해 보일러가 처음 작동을 멈췄을 때는 대처방법을 모르는 고객이 많았지만, 이제는 많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경주, 포항 등 비슷한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이어진 것도 문의가 줄어든 이유로 보인다.

경쟁사인 경동나비엔의 경우, 아직 이번 지진 관련 문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과거에도 지진 발생 2~3일 후에 문의가 오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우선은 홈페이지를 통해 지진 관련 안내를 띄워둔 상태”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지진으로 인해 보일러 관련 2차 사고가 발생한 적은 없었다. 다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진 추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우려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처럼 지진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귀뚜라미보일러는 적잖은 홍보효과를 얻고 있는 상태다.

물론 뜻밖의 역효과도 있다. “지진을 느꼈는데, 귀뚜라미보일러는 계속 작동했다”는 사례가 종종 포착되고, “시공업자가 지진감지센서를 꺼놨다”고 항의하는 사례도 있다.

이에 대해 귀뚜라미보일러 측은 “설치환경에 따라 보일러에 가해진 진동이 다를 수 있다. 시공업자 관련 내용은 일부 접한 바 있으며 절대 발생해선 안 될 일이다. 시공업자 단체 등에 계속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진과 관련해 철저한 안전을 갖추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재해와 관련된 것인 만큼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거나 적극 홍보하진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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