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책자를 정리하는 백악관 관료.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백악관이 내년도 예산안 초안을 발표했다. 예산 총액은 4조4,000억달러, 전년 대비 10% 늘어난 액수다.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160페이지짜리 새 예산계획서에는 이 거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사고가 담겼다.

◇ ‘북한 정조준’ 국방예산 큰 폭 증가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는 중이지만, 미국은 ‘힘에 의한 평화’ 이념을 다시 내세웠다. 주요 타깃은 이란을 비롯해 반미 색채가 짙은 중동 국가들, 그리고 북한이었다. 이번 예산안에서 국방부와 재무부는 ‘북한의 위협’이나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 등 대북 강경전략을 암시하는 표현을 총 일곱 번이나 사용했다.

국방비는 예산 증가폭이 가장 컸던 항목이었다. 국방부는 작년 책정된 예산보다 13% 많은 6,860억달러의 예산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의 제1경계대상으로 제시된 것은 물론 북한이다. 국방부는 예산산정내역을 설명하며 북한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알래스카의 지상요격기를 증설하는 등 미사일방어체계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무부는 대북 경제압박을 주요 사업목표로 제시했다. 이번 예산안에서 재무부의 총 예산이 3%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금융정보국의 예산은 3,600만달러 늘어났다(1억5,900만달러). 금융테러리스트로부터 자국 시스템을 보호함과 동시에 북한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겠다는 목표가 제시됐다.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도 작년보다 300만달러 증액된 예산계획서를 제출했다. 재무부는 “금융범죄단속반은 불법 금융활동에 대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며 북한과 마약운반조직을 양대 수사대상으로 뽑았다.

부처별 예산액 및 전년 대비 증감률. <그래프=시사위크>

◇ 복지 주머니에서 슬쩍한 건설자금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에서 “미국인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제공하기 위해” 새 다리와 철도·하수도·터널·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는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 연방정부 재정은 2,000억달러가 책정됐다. 기금을 조성하고 투자기업들에게 혜택을 제공하는데 1,000억달러, 낙후지역에 인터넷 설비 등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500억달러가 사용될 예정이다.

1조달러를 넘는 인프라 투자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당시부터 약속해왔던 공약이다. 그러나 경제부양 효과와 별개로 막대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당파를 넘어 반대의견도 많다. 미국은 국가부채가 20조달러를 넘어선 상태며, 늦어도 3월 중에는 부채한도 인상 협상도 진행해야 한다.

백악관은 복지예산을 끌어옴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는 중이다. 새 예산안은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폐지·개정함으로서 향후 10년간 인프라 투자를 진행할 재원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작년도 예산의 21%, 액수로는 179억달러가 깎인 보건복지부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도로 대표되는 ‘오바마케어’를 대대적으로 갈아엎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식비지원사업 ‘SNAP’과 의료보장제도 ‘메디케이드’가 메인 타깃이다. SNAP의 경우 향후 10년 동안 2,130억달러의 예산이 삭감되며, CNN은 이에 대해 “작년 한 해 4,220만명의 미국인이 SNAP의 혜택을 받았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교육부와 노동부 예산도 각각 10.5%와 21% 삭감됐다.

한편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겠다는 또 다른 공약을 위한 예산도 배정됐다. 국토안보부는 전년 대비 8% 증가한 460억달러의 예산을 배정받았으며, 이 중 16억달러는 국경장벽을 건설하는데 사용될 예정이다.

◇ 재정적자 우려 씻을 수 있나

다만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예산안 초안이 그대로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 많은 복지제도를 원하는 민주당의 불만은 물론, 균형재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일부 공화당원의 반대도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8일(현지시각)에는 적자예산에 반대한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의 필리버스터로 2018 회계연도 임시예산안이 표결에 부쳐지지 못하기도 했다.

재정적자가 금융충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믹 멀베이니 예산국장은 백악관이 2019년 예산안을 발표한 다음 날 TV 인터뷰를 통해 “큰 폭의 재정적자는 금리인상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인정했다. 비록 멀베이니 국장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적자 폭을 낮게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미국경제가 갈수록 늘어날 재정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꾸준히 성장할지는 미지수다. 멀베이니 국장은 “재정적자의 증가는 매우 위험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이기도 하다”며 확대재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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