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지난 9일 국방부 장관과 차관이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국방부 수뇌부의 이런 행위는 사건발생 38년 만의 처음이고, 그 자체로서 놀라운 일이었다. 그날의 대국민 사과는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건리)’가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에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표한 지 이틀 후에 이뤄진 것이었다.

송영무 장관은 이날 “국방부 장관으로서 우리 군이 38년 전 5.18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역사에 큰 아픔을 남긴 데 대해 국민과 광주 시민들께 충심으로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군이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거나 정치에 이용당하는 일이 없도록 법적·제도적 조치를 갖추겠다. 국군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에만 최선을 다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군으로 거듭 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대해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들은 송영무 장관이 “공식 사과하고 5.18특조위의 법적 한계와 함께 진상규명특별법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보도자료에서 “지금까지 국방부가 진실을 왜곡·은폐했던 태도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그동안 ‘자위권’ 운운하던 주장을 공식 철회하고 비인도적·적극적인 살상행위를 인정함으로써 진실규명을 위한 단초를 제공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에 앞서 국방부 5.18 특조위는 지난 7일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육군이 1980년 5월 21일과 27일 광주 시민에게 헬기 사격을 했고, 공군은 무장한 전투기를 대기시켰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설로만 떠돌던 ‘헬기 기총소사’가 38년 만에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특조위는 △군의 지시문서와 명령 △목격자 증언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탄환 등을 근거로 현지에 출동한 헬기 40여대 가운데 △일부 500MD(공격헬기)와 △UH-1H(기동헬기)가 광주 시민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서주석 국방부 차관도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았다. 서주석 차관의 사과는 과거 군의 과오에 대한 공적인 사과라기보다는 과거 자신의 사적인 행위에 대한 반성과 뉘우침 등을 담은 사과였다. 그는 광주 KBS가 최근 ‘서주석 차관이 1988년 5월 국방부의 ‘511대책특위’에 참여했었다’고 폭로한 데 대해 이를 회피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곧바로 시인하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정면 대응하고 나섰다. 

서주석 차관의 사과는 신속했다. 먼저 국방부 출입 기자들에게 장문의 사과문을 보냈다.  먼저 “5.18민주화 운동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군의 불법적인 정치개입에 맞서 저항하던 광주시민들의 수많은 생명과 인권이 안타깝게 희생되고 유린됐으며 5월 영령들의 명복을 빈다”는 말로 사과문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자신이 2년차 초임 연구원으로 국방부의 국회대책특위에 참여한 점을 무척 부끄럽게 생각하고, 광주 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본인의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서주석 차관은 또 국방차관으로서 5.18특조위 활동을 적극 지원해 왔고, 어떠한 방해 행위도 하지 않았으며. KIDA에 특조위 조사활동을 적극 지원할 것을 부탁했고, 특조위가 자신에게 설명을 요청해 왔을 때도 이를 회피하지 않고 직접 만나 소상히 설명해 주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서 5.18 특별법이 통과되기를 희망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후속 조사에도 적극 협조할 것을 다짐한다며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사과문에는 따르면, 서주석 차관은 당시 국방부가 지시한 광주 관련 현안보고 마무리 작업에 부서장 지시로 뒤늦게 합류, 부서장 지시를 받아 선배 연구원과 함께 국방부의 문안수정과 예상 질의응답 자료 검토를 수차례 했다고 밝혔다. 그 과정에서 서주석 차관은 부서장과 적잖은 마찰을 빚었다. 그러다가 나중엔 부서장 지시를 거부하게 됐는데 KIDA에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연구원을 그만 두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 후 그런 일은 더 이상 서주석 연구원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서주석 차관에게 주어진 업무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었다. 주로 국방부에서 5.18 관련 보고서나 발표문 초안, 질의응답 초안 등이 오면 문장을 다듬고 목차를 바꾸거나 일부 내용을 보완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서주석 차관이 수정하면 부서장이 읽고 그대로 받거나 다시 고치라고 지시했고, 국방부로 보내졌다가 다시 보완하라는 지시가 오가기도 했다. KIDA 보고서가 국방부 보고서와 내용이 거의 같다는 최근 지적은 초안이 여러 차례 오가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서주석 차관은 말했다.

당시 국방부(오자복 장관)는 국회 5.18청문회에 대비해 차관(신치구)을 위원장을 맡고 제1차관보와 관련 국장·합참의 부장·육군본부 처장·KIDA 부원장 등 12명이 참여하는 국회대책특위를 구성했다. 서주석 차관이 참여했다는 ‘511 연구위원회’는 대책위 산하 실무위원회로 국방부 제1차관보가 위원장을 맡고 보안사 부대장 등 5명의 위원과 전담 실무위원 14명으로 구성된 조직이었다.

전담 실무위원은 국방부·합참·육본·보안사 등에서 나온 실무자급들로 특위 위원이나 연구위원을 지원했다. 서주석 차관은 사과문에서 “그곳에 한 번도 출근하지 않았고 회의에 참석한 기억도 없다”고 밝혔다. 심지어 1988년 5월 당시 자신이 참여했던 조직이 ‘511 연구위원회’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 자신이 KIDA 선배 연구원과 함께 전담 실무위원으로 편성됐다는 사실조차도 그 때는 몰랐었다고 털어놓았다.

서주석 차관은 자신의 행위를 숨기거나 왜곡, 변명하지 않고 사실대로 밝히면서 정면 대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연구원 초년병 시절 불가피하게 주어진 5.18 진상 왜곡 업무에 소극적으로나마 참여한 데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진심으로 뉘우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오랫동안 국방부 소속 연구기관(KIDA)에 몸담아 왔지만 5.18 민주화운동을 폄하하거나 계엄군의 잔혹한 무력진압을 옹호하는 대열에 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런 취지의 칼럼 같은 것을 쓴 적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서주석 차관의 이번 사과문은 일시적인 위기 모면용 잔머리가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일종의 양심선언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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