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총기규제와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AP>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미국 상무부가 무역확대법 232조에 따른 조사결과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국가의 철강제품에 24%의 관세를 물리고, 한국과 중국 등 특정국가의 제품에는 53%의 관세폭탄을 때리는 방안이 포함됐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안보 침해가 인정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및 수입물량 제한 등의 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다.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청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연간 약 3,000만 톤의 철강을 수입하는 세계 최대 철강수입 국가다. 2016년 기준 국가별로 캐나다(17%), 브라질(13%), 한국(12%) 순으로 조사됐다. 2017년에는 캐나다, 브라질, 멕시코, 한국, 일본 순으로 미국에 철강을 수출했다. 한국은 중국, 브라질, 터키, 베트남, 인도 등과 함께 관세폭탄 대상국가로 보고서에 지정됐다.

◇ 관세폭탄 대상국에 일본 제외 한국 포함 ‘왜’

일본이 제외된 반면, 한국만 포함된 것은 중국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최대 철강수출 국가지만, 미국 수입물량 중 중국산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철강산업을 견제하려는 전략이다. 문제는 중국산 철강이 한국 등 주변국가를 거쳐 미국에 수출되는 이른바 ‘우회 수출’을 트럼프 행정부가 의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수입량이 줄어드는 추세지만, 한국이 중국산 철강재 최대 수입국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4월 초에 내려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화제가 되고 있는 미 상무부의 보고서가 확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상 그대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무역확대법 232조 조사는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 미국 내에서도 팽팽한 찬반논란이 있었고, 보고서 발표는 미뤄져 왔다. 그럼에도 끝내 발표를 감행한 것은 곧 시행하겠다는 의미로 봐도 무방하다는 분석이다. 우리 측 유관부처는 물론이고 무역협회도 이미 지난해부터 그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적어도 ‘보호무역’ 조치와 관련해서는 거칠지만 직접적이고 공격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행적도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현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에 대한 탈퇴 압박으로 주변국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으며, ‘불공정 거래’로 규정했던 한미FTA도 재협상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또 지난달에는 세탁기와 태양광 제품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16년 만에 발동하기도 했다. 보호무역 기조가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미국 내 반대론이 만만치 않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밀어붙이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에 문재인 대통령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그간 한미동맹 균열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통상부문 언급을 되도록 자제해왔지만,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 철강규제 내용이 발표되자 기류가 변했다. 19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은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서는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 ‘규범과 제도’라는 원칙론으로 맞불 대응 

미국의 철강 수입규제 등 통상압박에 문재인 대통령이 WTO 제소 등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뉴시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WTO 제소와 세이프가드 협정에 따른 양자협의 등이 제시됐다. 20일 홍장표 경제수석은 “WTO 협정을 비롯한 국제통상 규범에 따라 대응조치를 과감히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울러 중국제품의 ‘우회 수출’이라는 미국의 의심을 해소하기 위한 설득작업과 함께 수출다변화 전략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의문점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처가 과연 실효성이 있느냐의 여부다. 문 대통령의 입장은 국제법과 절차에 따른 다소 원칙적인 대응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묘수’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WTO에서 승소를 하더라도 미국이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엄연히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 안일한 대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원칙적 대응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설사 WTO 소송결과에 대한 강제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명분을 얻을 수 있으며, 보복관세 조치를 취하더라도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미 FTA 협상과정의 지렛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사안마다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의 원칙적 대응’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과도 합치한다. 따라서 정치적 혹은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거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담판’ 형식의 해결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안보논리와 경제논리는 다르다”는 문 대통령의 상황인식을 꼬집기도 한다. 미국이 내심으로는 북미대화 혹은 남북대화를 고리로 우리 측으로부터 통상부문 양보를 원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분리대응’에 관한한 청와대의 기류는 분명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우리만 투트랙 전략을 취하는 게 아니라, 미국 측 입장도 우리와 동일하지 않느냐”며 “튼튼한 한미 안보동맹의 바탕 위에서 현실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통상문제는 각국의 국익 극대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미대화와 남북대화 등 안보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미동맹이 흔들림 없다는 인식이 확실하게 안정궤도에 들어섰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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