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선수들과 빙상연맹은 씁쓸한 모습을 드러내며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경기 후 인터뷰에 나섰던 박지우의 모습.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요즘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역시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다. 음식점 TV에서도, 가정의 TV에서도, 심지어 지하철 승객의 스마트폰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경기모습이 펼쳐지곤 한다.

현장을 직접 찾은 관중들은 물론이거니와, TV로 지켜보는 국민 모두 마음은 같다.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 특히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우리나라 개최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뽐내길 바란다.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묵묵히 노력해온 선수들이 후회 없는 경기를 치르는 것이다. 은메달을 목에 건 이상화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고, 뜨거운 박수를 받은 이유다.

하지만 지난 19일,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이 보여준 모습은 국민적 분노를 일으켰다. 여전히 뜨거운 논란에 휩싸여있는 김보름과 박지우, 노선영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 함께 나섰다. 팀추월은 3명이 함께 레이스를 펼쳐 마지막 선수의 기록으로 성적을 다투는 종목이다. 계주와는 또 다른 팀워크가 요구되고, 그 어떤 빙상종목보다 진한 동료애가 드러난다.

그러나 우리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을 연출했다. 노선영이 뒤로 처지는 상황에서도 김보름과 박지우는 질주에 가속도를 붙였고, 결국 이들은 따로따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차이가 무려 4초에 달할 정도였고, 당연히 우리의 성적은 맨 마지막에 들어온 노선영의 기록이었다.

경기 후에 펼쳐진 상황은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김보름과 박지우는 뒤늦게 들어온 노선영과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았고, 또 다시 노선영을 남겨둔 채 두 사람만 자리를 떠났다. 홀로 앉아 눈물을 쏟는 노선영을 위로한 건 외국인 코치였다.

인터뷰 역시 김보름과 박지우 두 선수만 등장했다. 이들은 경기와 관련해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설명을 늘어놓았고, 특히 김보름은 마치 노선영을 비웃는 듯한 인상을 줬다.

파문은 컸다. 많은 이들이 온라인에 분노를 표출했고, 청와대 국민청원에 관련 내용이 올라가자 순식간에 수십만 명이 동참했다. 김보름을 후원하던 기업도 된서리를 맞았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스포츠정신은 물론 인간성마저 잃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다. 만약 김보름과 박지우가 노선영을 도와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면, 꼴찌의 기록이라도 큰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가 펼쳐진 공간이 우리나라 평창이라는 점도 분노를 더하게 만든다. 개최국인 우리나라는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다. 여자 팀추월 대표팀이 보여준 씁쓸한 모습은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망신’이 돼버렸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빙상계 ‘적폐’가 또 다시 드러났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국민적 분노의 방점이다.

빙상계 내부 파벌 및 차별 문제는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드러난 바 있다.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초유의 사건도 이 문제가 크게 작용했다. 특정 종목이나 선수의 문제가 아니라, 빙상계 전반에 오랜 기간 쌓인 적폐인 것이다. 이번 사태 역시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상이라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고, 폭로도 나오고 있다. 매번 근본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 우리나라가 개최한 올림픽에서 썩은 고름이 터져버린 상황이다.

파문이 커지자 김보름과 백철기 감독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보름은 눈물을 흘렸고, 백철기 감독은 노선영이 뒤처진 이유에 대해 “노선영이 제안한 작전이었다”고 해명했다. 정작 노선영에 대한 사과는 없었고, 기자회견 이후 노선영으로부터 반박 입장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의 본질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인지, 모른 척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박지우다. 1998년생인 박지우는 아직 만 20세도 되지 않았고,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나선 지는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향후 10년은 더 태극마크를 달 수 있는 선수다. 그런데 벌써부터 빙상계 적폐에 물들어버린 모습이다. 박지우의 인터뷰에서, 노선영을 향한 최소한의 인간적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사태를 또 다시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박지우는 또 다른 김보름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박지우가 등장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지금의 김보름과 박지우가 빙상계 적폐를 계승했듯 말이다. 그리고 그때 터질 고름은 더 이상 회복이 불가한 수준일 수 있다.

아직 때 묻지 않아야할 나이인 박지우가 사태의 중심에 선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선수이기에 철저한 반성과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 박지우의 첫 올림픽이 빙상계 적폐의 마침표가 돼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빙상계 전반에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빙상계 스스로 변화하는 것은 이제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대대적인 물갈이와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이 요구된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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