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국회를 방문한 베리 앵글 지엠 부사장과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의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방침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대규모 실직 사태 및 지역경제 붕괴에 대한 우려가 높은 가운데, 뚜렷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지엠은 그동안 공장가동 중단을 비롯한 철수설에 꾸준히 휩싸여왔다. 특히 산업은행의 ‘비토권’이 지난해 만료되면서 한국지엠 철수를 막을 마지막 방법도 함께 사라졌다. 철수설이 불거질 때마다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치던 미국 지엠 본사 측은, 결국 설 명절을 앞둔 시점에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방침을 발표했다.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가운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자 곳곳에서 책임공방이 일었다. 정권의 무능함이란 지적, 전 정부의 문제라는 지적, 제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한 노조가 파국을 몰고 왔다는 지적 등이 엇갈리며 혼란과 갈등만 더해졌다.

◇ 조심스럽던 지엠의 전격적인 폐쇄 발표, 절묘한 ‘타이밍’

여기서 짚고넘어가야할 점은 지엠의 행보가 상당히 치밀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겐 군산공장 폐쇄가 초유의 사태와 다름없지만, 지엠에게는 그렇지 않다. 최근 10년 새 전 세계 각지에서 정부와 ‘밀당’을 하고, 철수 및 폐쇄를 결정한 사례가 많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최고의 ‘베테랑’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엠의 핵심 공략지점은 일자리와 지역경제다. 자동차공장 같은 대규모 산업시설은 많은 고용을 창출할 뿐 아니라, 지역경제의 기둥 같은 역할을 한다. 2차, 3차 등 협력사와 해당 지역의 각종 서비스업, 부동산까지 지역경제 생태계가 돌아갈 수 있는 근간이다.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가 많은 이들의 생존은 물론, 군산 지역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준다는 의미다.

반면, 지엠에게 있어 군산공장의 의미는 크지 않다. 군산공장이 가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공급에 차질을 빚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손실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지엠은 이 같은 한국지엠 군산공장을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을 경우, 폐쇄가 군산공장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일종의 신호다.

지엠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시기다. 국내적으로는 설 명절을 앞둔 시점에 폐쇄 방침이 발표됐고, 폐쇄가 이뤄지는 시점은 6월 지방선거 직전이다. 단순히 경제·산업적 이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로 확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지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과정을 더 수월하게 해줄 수 있다. 정부 및 여당은 선거를 의식해 강경한 입장만 고수하기 어렵다. 또한 정치권 특성상, 서로 다른 주장과 비판 등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지엠 입장에선 자신들에게 집중될 시선과 각종 비판이 분산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또한 최근 한·미 관계에서는 ‘통상 갈등’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 발표 뒤엔 미국 정부와의 충분한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엠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이 자신의 성과라고 내세우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통상압박,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불거지고 있는 갈등은 지엠 입장에서 역시 긍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불리한 쪽은 우리 정부이기 때문이다.

지엠은 과거 다른 국가에서도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일자리와 지역경제를 볼모로 잡고 각종 지원을 요구했고, 철수 등을 결정할 때는 선거 등 정치적 요인도 면밀히 고려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지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신들에게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났다는 점이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과 장기적 관점에서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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