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북한전문기자.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15일 강릉 아이스아레나. 피겨스케이팅 페어 프리스케이팅 종목에 출전한 북한 선수 염대옥·김주식 조가 출전하자 북측에서 내려온 응원단은 목청을 높였다. 국제 수준엔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기량이었지만 북한팀은 자신들의 역대 최고점수를 기록하며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경기를 마쳤다. 20~30대 여성으로 이뤄진 200여명의 북측 응원단은 박수와 환호로 이를 축하했다.

문제는 곧이어 미국 피겨 페어 선수들이 출전하면서 벌어졌다. 선수 소개에 관중석의 박수가 터지자 북한 응원단 가운데 한 여성이 박수를 쳤다. 다른 응원단 모두가 미국 선수를 외면하거나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것과 달리 튀는 실수를 한 것이다. 바로 옆 동료가 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눈치를 주자 문제의 여성 응원단은 놀라는 표정으로 박수를 중단하고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장면은 맞은편에서 북측 응원단을 주시하던 일본의 한 민방TV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언론을 통해 이 장면이 퍼지면서 문제의 북측 여성의 신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으로 돌아간 뒤 가혹한 처벌이 따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의 북·미 간 날카로운 대결상황에 비춰볼 때 ‘미 제국주의에 박수를 쳐 댄’ 행동은 용납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다.

북한 당국은 평창 파견 직전 북한 선수단은 물론 응원단과 예술단원 등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사상교양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선수촌에 입촌해서도 하루의 잘못을 자아비판하는 형태의 이른바 ‘총화 사업’를 벌였다는 게 우리 관계당국의 파악내용이다.

사실 평창 동계올림픽은 북한 일반 주민들에게 금단의 열매와 같은 사안이었다. 누구도 ‘남조선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는 걸 발설했다가는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남조선에서 머지않아 열리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에 대해 말한다면…”이라며 운을 떼버렸다. 북한 주민 대부분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신년사를 지켜보는 가운데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천기누설’로 까지 볼 수 있다. 자칫 “남쪽에서는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에 이어 동계올림픽까지 열리는 데 우리는 뭔가”라는 동요의 입소문이 주민 사이에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올림픽 기간 내내 몸조심 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정은 신년사에도 불구하고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에선 ‘평창’이란 단어는 점차 빛을 잃었다. 남북한이 합의문을 체결했는데도 북한의 관련 보도에서는 아예 ‘평창’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의도적으로 빼거나 삭제한 것이다.

평창 올림픽이 끝나면서 북한 당국은 서울 구경까지 하고 돌아갈 예술단을 비롯한 북측 인원들의 입단속에 골머리를 앓게 될 공산이 크다. 마식령스키장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인 국제수준의 올림픽 시설은 물론, 고속철도(KTX) 경험과 번화한 서울 전경 등은 큰 충격일 게 분명하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인들과 20~30대 선수단 및 응원단의 경우 더 파급력이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커튼이 드리워진 차창 틈으로 살짝 엿 본 남한 사회의 발전상은 이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만들었을 공산이 크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간 동안 북한에서 남한을 다녀갔거나 체류한 인원은 8개 분야에 걸쳐 492명에 이른다. 김정은의 특사로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비롯한 고위급 대표단이 22명 방남한 것을 비롯해 △선수단 46명 △예술단 137명 △△태권도 시범단 31명 △기자단 21명 △응원단 229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관련자 2명 △북한올림픽위원회(NOC) 관계자 4명 등이다. 이들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응원단과 예술단은 북한의 중산층 이상 가정 출신이거나 해외 문물에 어느 정도 눈을 뜬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탈북 인사들의 전언이다.

이들 2030세대는 북한에서 이른바 장마당 세대로도 불린다. 국가체제의 배급에 의존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대부분의 생활을 비공식적인 장마당 유통에 의해 영위한다는 점에서다. 이를 통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은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외부사조에 눈 뜬 경우가 많다. 북한판 한류라 불리는 가요와 영화·드라마를 적어도 수십 편 씩은 접했을 것이라고 북한 예술단 출신 여성 탈북자들은 입을 모은다.

사실 남한 사회의 발전상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건 북한 고위층 간부도 마찬가지다. 김대중(DJ) 정부 때인 2002년 10월 고위급 경제시찰단 남한방문 때도 이런 일은 벌어졌다.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 고층빌딩과 서울의 불야성을 마주한 북측 고위 인사들은 “눈이 두 개밖에 없어 더 많이 볼 수 없는 게 안타깝구만…”이라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선물 등을 너무 많이 받는 바람에 “평양에 돌아가 시계방을 차려도 되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KTX 경부선 구간을 시승한 이들은 시속 300km를 돌파하자 일어나 박수를 치기도 했다. 남한 사정을 좀 안다고 자신하던 장성택 노동당 제1부부장도 기흥의 삼성전자 생산라인을 돌아보다 김치냉장고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들이 돌아간 직후 정보 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김치냉장고를 몰래 보내준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마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등은 평양으로 귀환했다. 이들 일행은 돌아간 뒤에도 곧바로 가정이나 직장·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른바 ‘물빼기’라고 불리는 집단 교양학습을 거치면서 남한 방문과정에서 접한 발전상은 물론 동경심리를 떨쳐내도록 강요받는다. 가혹할 정도의 사상검증과 단속이 이뤄진다는 얘기다. 과거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등에 왔던 여성 응원단 중 일부가 친구나 가족에게 남한 사회의 발전상에 대해 언급했다가 엄한 처벌을 받았다는 첩보가 우리 정부 당국에 입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철저한 단속과 사상교양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발전상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을 청춘세대들을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낡고 썩어빠진 자본주의 사회’로 선전되고 강요받아온 남한 체제를 직접 접하며 느꼈을 충격과 동요를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점에서다. 평창올림픽에 다녀간 북한의 선수단과 응원단·예술단 구성원이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이끌 메신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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