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정책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연설비서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세 명의 사람만 모여도 정치를 한다”는 말이 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거나, 서로 힘을 겨루어 서열을 매긴다. 초등학교 반장선거부터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까지, 시골의 이장부터 시작해 대통령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 정치적 활동이 스며있다. 그래서 “호모 폴리티쿠스(Homo politicus)”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존재라는 말이다.

조선건국에 주역이었던 정도전은 그 자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게다가 정치적 야망까지 있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자신이 아니라 이성계를 개국 군주로 만드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고자 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머리를 빌려야 자신이 개국 군주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이성계와 정도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한 배를 탔다. 여기서, 정도전이 진정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여, 자신은 빛도 이름도 없이 이성계만을 왕으로 세우는 것? 아니다. 만약 그가 그랬다면 나중에 태종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왕을 세운 대부분의 신하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권력, 그 자체였다. 내가 왕이 될 수 없으니, 내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없으니,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을 세워 자신이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럼, 최근 실형을 선고받은 우병우 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떤 참모였을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희생하여, 박대통령이 좋은 정치를 하도록 돕고자 했던 참모였던가. 그러했다면, 우병우 수석 또한 전 국민의 재판을 받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대통령 측근들 중 단 한 명이라도, 진정으로 대통령이 바른 판단을 하고 바른 정치를 하도록 도왔다면, 더불어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참모가 있었다면, 어쩌면 박대통령 또한 지금과 같은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진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여기서 한번 짚어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은 누구나 권력을 갖고 싶어 하고, 자신의 정치를 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모의 위치에 있었으나, 정도전은 참모로서가 아닌 자신의 정치 이상을 실현하고 싶었고, 우병우 수석은 자신의 권력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 권력의 맛이 달콤했던 만큼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정치에서 권력을 뺄 수 없듯이, 정치판에 들어서는 순간 참모도 돕는 자의 역할이 아닌, 자신의 정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판에 “참모는 없다”. 정치를 하는 또 다른 정치인이 있을 뿐.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에게 누군가 물었다. “어떻게 당대 최고의 영웅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얻었습니까?” 유방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전략을 세우는데 있어 장량만 못하다. 나는 전투에 있어 한신만 못하다. 나는 천리 길 전장에 군량을 조달하는 것에서 소하만 못하다. 이런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세 사람의 참모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참모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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