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 부부장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첫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이승훈 선수(30·대한항공)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승훈 선수는 초대 챔피언으로 영원히 기록되는 영광을 얻게 됐다. 이승훈 선수의 영광에는 후배 정재원 선수(17·동북고)의 도움이 컸다. 경기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태극기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실제 정재원 선수는 경기 중반까지 2위 그룹 선두를 달리며 페이스메이커를 담당했다. 도발적으로 속도를 내며 치고나가는 선두그룹과 격차를 만회 가능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한편, 후미에 있는 이승훈 선수의 바람막이가 돼 마지막까지 체력을 비축할 수 있게 도왔다. 사전에 합의한 작전과 선수들 사이 호흡이 없었다면 금메달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금메달’ 위한 다른 선수 희생, ‘공정하지 않다’ 여론 존재

다만 이를 불편해하는 일부 여론도 있었다.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위해 다른 선수가 희생하고 밀어주는 것이 과연 ‘공정’한 일이냐는 의심에서다. 금메달을 획득하면 모두가 칭송했던 과거 여론과 다른 기류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했다. 안현수 선수 사건으로 공론화된 쇼트트랙 파벌싸움과 밀어주기 등의 전례가 있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에 앞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을 결정했다가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올림픽을 위해 피땀흘린 선수들이 ‘정치적 이유’로 출전기회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이낙연 총리가 “메달권에 있는 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사과하는 촌극도 있었다.

당시 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크게 출렁였다. 리얼미터 주간집계를 살펴보면, 1월 2주차 70.6%를 기록했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4주차 조사에서 60.8%까지 떨어졌다. 취임 후 가장 가파른 하락곡선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던 20~30대 청년층에서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게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가능>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가상화폐와 남북단일팀 사안에서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층이 이탈한 게 사실”이라며 “이견이 있어도 더 중요한 가치를 이해할거라 생각했는데 특별한 현상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반응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고 우리도 반성해야 한다”고 털어놨었다.

◇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키워드 ‘공정’

남북단일팀은 공정하지 못하며,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의 응답이 많았다. <데이터=글로벌리서치, 한겨레21>

사실 ‘공정’이라는 키워드는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시대정신으로 부상한 측면이 있다.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고 했던 정유라의 말이 불씨가 돼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재벌총수들의 상납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들의 희생으로 성장했음에도 정경유착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했다는 게 드러났다. 무엇보다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적나라한 현실에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강원랜드를 포함해 공공기관과 금융권 부정청탁과 채용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국민들의 인식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연히 읽힌다. 한겨레21과 글로벌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74.4%로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25.7%에 불과했다. 또 ‘계층상승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은 22.9%인 반면, 어렵다는 응답이 77.1%에 달했다.

특히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 제공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이 81%로 나타났다. 남북관계 개선 등 정부가 ‘대의’라고 여겼던 것 이상으로 국민들은 ‘공정’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 대통령도 국민들과 청년들의 이 같은 반응에 굉장히 놀랐다는 후문이다. 최근 청와대에서 진행된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남북단일팀 등 국민 대다수가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안들에 대해 반대여론이 큰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말한 것으로 한 참석자가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비전에 국민의 엄중한 뜻이 담겨 있다”는 문 대통령의 강조사항을 언급한 뒤 “정책수립 전 ‘민심’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는 한겨레21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3일부터 25일까지 진행했다. 인터넷 조사 방식으로 실시해 19세 이상 59세 이하 남녀 2,000명이 응답을 완료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 포인트, 응답률은 35.9%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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