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에서 승소한 강제노역 피해자들 및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모습. 미쓰비시와 후지코시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꾸준히 피해자 승소로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대법원 최종 판결을 나오지 않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오는 3월 1일은 제99주년 3.1절이다. 일본제국의 폭압에 맞서 맨손으로 만세를 외치며 평화와 독립을 외쳤던 그날이 어느덧 한 세기 전이 됐다. 우리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이 잊지 말고 새겨야할 의미를 담고 있는 날이다.

일본제국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위안부할머니 등 끔찍한 고통을 당한 이들이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진심어린 반성은커녕 제대로 인정조차하지 않고 있다. 주요 정치인들의 신사참배는 반성 없는 일본의 민낯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너무나도 쉽게 잊혀지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바로 일본 전범기업들이다.

일본 정부가 과거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는 것과 일본 전범기업들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우선, 복잡한 정치적 논리가 작용할 수밖에 없는 정부와 달리, 기업들은 민간의 영역에 있다.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다.

더욱이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범기업 중엔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곳도 적지 않다. 과거의 잘못은 뒤로한 채,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제 아무리 글로벌 시대이고, 자유시장경제라 할지라도 이러한 일본 전범기업의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미처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이 많지만 말이다.

◇ 최악의 전범기업 미쓰비시, 토요타·닛산도 ‘오명’

2015년 기자회견에서 미쓰비시의 사과를 촉구하고 있는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뉴시스>

전범기업의 범위는 보는 기준에 따라 다르다. 광범위하게 보자면, 당시 존재했던 모든 기업들이 사실상 전범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제국의 총동원령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기업은 없었기 때문이다. 의지와 무관하게 동원된 기업도 있을 수 있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기업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진짜 전범기업들은 일본제국에 적극 동조하며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인 곳이다. 이들은 식민지 시절 노동력 등을 착취하며 인권을 유린했고, 이를 통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이러한 기준을 바탕으로 지난 2012년 299개의 일본 전범기업을 발표한 바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의 3대 재벌로 꼽히는 미쓰비시그룹이다. 미쓰비시그룹은 전투기, 군함 등 각종 군수품을 조달했을 뿐 아니라, 강제노역을 통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영화 ‘군함도’의 실제 모델이 바로 미쓰비시그룹이다. 가혹하게 노동력을 착취한 수준을 넘어,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앗아갔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전범기업인 만큼, 미쓰비시그룹을 둘러싼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우선,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당했던 이들 중 일부 생존자들이 1999년 일본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일본 법원은 이 소송을 모두 기각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선 패소했지만 2012년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다만, 법적절차상 파기환송돼 고등법원을 다시 거친 재판은 아직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일본과의 외교적 문제 등을 고려해 판결이 지연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한편, 이 소송엔 당시 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참여하기도 했다.

톱스타 송혜교가 2016년 미쓰비시자동차의 중국 CF 출연을 거절한 사건 역시 큰 이슈를 모은 바 있다. 당시 논란에 휩싸였던 미쓰비시자동차는 2008년 국내에 진출했으나 2011년 불매운동 및 퇴출운동에 직면해 철수했고, 2012년 다른 딜러사를 통해 재차 진출했으나 저조한 판매실적 속에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또 인기를 끌고 있는 미쓰비시그룹 소속 기업 및 제품도 있다. 니콘 카메라, 기린 맥주, 그리고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 등이 미쓰비시그룹 소속이다.

미쓰비시그룹과 함께 악명 높은 일본 전범기업으로는 후지코시가 있다. 강제노역 규모가 가장 컸던 곳으로 전해진다. 후지코시 역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가 있었고, 꾸준히 승소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산업이 자동차인 만큼, 국내에서도 일본 자동차브랜드의 입지는 상당하다. 그러나 이들도 전범기업이란 오명에서 자유롭지 않다.

일본 전범기업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전투기를 만든 기업들인데, 그 중 하나가 ‘타치가와 비행기’란 곳이다. 타치가와 비행기의 핵심 기술자는 패망 이후 토요타자동차에 합류해 성공을 이끌었다. 또한 타치가와 비행기의 또 다른 직원들이 설립한 프린스자동차는 1966년 닛산자동차와 합병했다. 닛산자동차에도 전범기업의 DNA가 있는 셈이다. 특히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인피니티 시리즈는 프린스자동차 시절부터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모델이다.

지난해 국내에 트럭 모델을 런칭한 이스즈 역시 299개 전범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카라멜로 유명한 모리나가제과도 전범기업으로 꼽히며, 최근 한바탕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모리나가제과 제품을 버젓이 판매한 GS25 편의점이 거센 비판을 받았고, OEM 방식으로 제조한 남양유업도 홍역을 치렀다. 현재 이 제품은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국내 콘돔시장에서 독보적 판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카모토 역시 전범기업이라는 점은 씁쓸함을 더하게 만든다.

강제노역을 다룬 영화 ‘군함도’의 스틸컷. 일제시대 강제노역은 노동력 착취를 넘어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 “정부 차원 노력, 국민 관심 필요해”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전범기업의 태도다.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어떠한 인정이나 반성,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김진영 간사는 “미쓰비시 등 소송이 제기된 일본 전범기업들은 오로지 시간끌기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독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전쟁을 일으키고 여러 전쟁범죄를 저지른 독일의 많은 기업들 역시 전범기업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깨끗이 인정 및 사과했을 뿐 아니라,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에도 적극 나섰다. 무려 6,500개 기업이 정부와 함께 약 8조원 규모의 재단을 설립했으며, 이 재단은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진영 간사는 “피해자 규모가 크고, 대부분 고령인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협의해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전범기업들이 지원하는 방식 등이 있을 수 있다”며 “국민들의 많은 관심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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