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그룹 계열사 현대EP가 과거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를 지냈던 인물의 사외이사 재선임을 추진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현대산업개발그룹 계열사 현대EP가 본래 취지에 걸맞지 않는 사외이사를 재선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상당히 이례적인 이러한 행보 속엔 정몽규 현대산업개발그룹 회장의 ‘사람 챙기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현대EP는 오는 23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 예정이다. 안건 중엔 사외이사 재선임 건도 포함돼있다. 현재 유일한 사외이사인 최동주 사외이사를 재선임 한다. 그는 2016년 2년 임기의 현대EP 사외이사로 선임된 바 있으며,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었다.

문제는 최동주 사외이사의 이력이다. 그는 과거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지낸 인물이다. 정몽규 회장과는 공동대표 체제를 이루기도 했다.

◇ 계열사 사외이사에 전 사장이?

1970년대 현대건설에 입사한 최동주 사외이사는 이후 현대미포조선을 거쳐 현대백화점에서 20여년 근무했다. 현대백화점 시절엔 새로운 점포를 개발하는 역할을 맡아 13개의 점포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최동주 사외이사는 2005년 현대아이파크몰 사장으로 영입됐다. 원래 ‘현대역사’였던 사명은 그가 취임한 후 현대아이파크몰로 변경됐고, 완전히 다른 회사로 체질개선에 성공했다. 최동주 사외이사는 용산민자역사에 위치한 복합쇼핑몰(당시 국내 최대규모) ‘아이파크몰’ 개장 및 운영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제는 이곳저곳 많이 생긴 ‘쇼핑몰’ 문화의 시초를 다진 인물로 남아있다.

특히 최동주 사외이사는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소통 및 리더십이 뛰어난 전문경영인으로 평가받았다. 외부적으로도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거침없는 발언으로 인해 간혹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용산역 노숙자 100여명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하고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해준 일화도 남아있다.

이처럼 현대아이파크몰에서 능력을 발휘한 그는 2010년 현대산업개발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또 한번 도약했다. 당시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경영최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김정중 전 부회장을 대신해 정몽규 회장과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다.

현대산업개발에서도 최동주 사외이사는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창사 4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2016년 매출 10조 달성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비전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불과 1년 3개월 만에 돌연 사퇴했다. 예상치 못한 뜻밖의 일이었지만, 당시 현대산업개발 측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했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뒷말이 무성했다. 특히 비슷한 시기 벌어졌던 범현대가의 갈등이 전격적인 사퇴의 배경으로 지목됐다.

2011년 현대상선 주총에서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놓고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이 충돌했는데,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현대그룹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다 주총을 하루 앞두고 돌연 현대중공업 측으로 돌아선 바 있다. 재계에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현대그룹 편에 서는 정몽규 회장에게 크게 화를 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산업개발이 범현대가 갈등에서 급격히 입장을 바꾸게 됐고, 이 과정에서 최동주 당시 사장이 물러나게 됐다는 것이 재계의 주된 시각이었다.

◇ 현대산업개발그룹의 ‘시대 역행’

최동주 사외이사의 이러한 과거 이력은 현대EP 사외이사로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외이사의 핵심 요건이라 할 수 있는 독립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현대EP의 최대주주는 최동주 사외이사가 과거 대표를 지낸 현대산업개발이다. 즉, 과거 근무했던 기업의 자회사에서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셈이다. 또한 과거 함께 공동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정몽규 회장은 현대EP 사내이사이기도 하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이수정 연구원은 “이 정도 규모의 상장기업 중에선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인 케이스”라며 “그냥 임원도 아닌 대표까지 지낸 바 있기 때문에 사외이사로서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외이사로서 전문성이나 해당 기업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독립성”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지적은 2년 전 처음 사외이사로 선임됐을 때도 제기됐었다. 주요 기업들의 주총 안건을 분석해 발표하고 있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는 2016년 현대EP의 최동주 사외이사 선임 추진에 대해 반대를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 절반 가까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외이사 선임은 그대로 강행됐고, 이제는 재선임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우리 경제계에서는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각종 묵은 적폐 해소가 이뤄지고 있다. 사외이사 문제 역시 그 중 하나다. 그러나 현대산업개발그룹의 행보는 이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한편, <시사위크>는 이와 관련해 현대EP 측 입장을 듣고자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해줄만한 사람이 없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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