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의혹을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기자회견이 취소된 8일 오후 충남 홍성군 도청 기자회견장.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자신의 성폭행 의혹과 관련해 “국민·도민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다”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8일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했다. 오후 3시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2시간 앞두고서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가해사실을 최초 폭로한 정무비서 외에 추가 피해자가 드러나자 직접 기자회견을 하는 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피해자가 더 있다"는 증언이 나온 만큼 제3의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기자회견에서 하는 말들이 추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전 지사의 측근인 신형철 전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1시경 문자메시지로 기자회견 취소를 알렸다. 안 전 지사는 해당 문자메시지에서 취소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국민 여러분, 충남도민 여러분 앞에서 머리 숙여 사죄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모든 분들이 신속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하여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드리는 우선적 의무라는 판단에 따라 기자회견을 취소하기로 하였습니다. 거듭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주십시오.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안 전 지사는 지난 5일 성폭행 가해 사실이 최초로 드러난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도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을 담은 짧은 입장문을 올린 뒤 사흘간 잠적했다. 이 기간 동안 측근들과 함께 변호인 선임 등을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전날(7일) 오후 6시경 신 전 비서실장을 통해 “국민, 도민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라며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알려왔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의 싱크탱크인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의 추가 피해 폭로가 나오자 기자회견 당일 일정을 취소한 것이다.

해당 연구원은 JTBC 뉴스룸을 통해 2016년 8월부터 2017년 1월까지 3차례에 걸쳐 안 전 지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지난해 1월은 안 전 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유력한 대선주자로 주가가 급등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연구원 역시 변호인단을 꾸려 안 전 지사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안 전 지사 측은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었으나, 현재 충남지사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남궁영 행정부지사가 “검찰에 출두하면서 사과하는 것보다 그동안 지지해준 도민과 국민께 앞서 사죄하는 것이 마지막 예의다. 그래야 충남 도정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취지로 설득을 하자 기자회견을 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한다. 그러다 추가 피해 폭로가 나오자 다시 기자회견 취소를 검토했다는 것이다.

천안여성의전화와 충남여성장애인연대 등 14개 충남지역 시민사회 단체는 8일 오후 천안역 일원에서 1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110주년 3·8 세계여성의 날 충남여성행진'을 개최했다. <뉴시스>

안 전 지사의 대선 경선 캠프 내에서도 성추행과 성희롱 등 성폭력과 물리적인 폭력이 만연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안 전 지사의 캠프에서 일했던 일부 구성원들은 ‘김지은과 함께하는 사람들’ 명의로 성명서를 내고 “노래방에서 누군가 끌어안거나,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대거나, 노래와 춤을 강요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선배에게 머리를 맞거나 뺨을 맞고도 술에 취해 그랬겠거니 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만연한 성폭력과 물리적 폭력은 ‘어쩌다 나에게만 일어난 사소한 일’이 아니라, ‘구조적인 환경’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민주주의는 안희정의 대표 슬로건이었지만 캠프는 민주적이지 않았다. ‘너네 지금 대통령 만들러 온 거야’라는 말은 당시에는 자부심을 심어주려는 말로 받아들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안희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낳았다. 정작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하면 묵살당하는 분위기에서 선배들과의 민주적인 소통은 불가능했다. 저희 역시도 그러한 문화를 용인하고 방조하는 데 동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죄책감마저 느낀다”고 했다.

충남도공무원노동조합은 “안희정의 비겁함과 비열함은 충남도정의 시계를 수십 년 후퇴시켰다. 정의와 민주주의란 말도 오염시켰다. 대한민국과 도민과 도청 직원은 당신에게 배신당했다”며 “기자회견 취소는 국민을 우롱한 처사다. 검찰은 철저하게 수사해 엄하게 처벌하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안 전 지사가 기자회견을 예정했던 이날은 UN이 공식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던 충남도청에는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사건을 규탄하는 여성단체 회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 여성에게 정의를’ ‘성평등은 민주주의의 완성’ ‘Me Too’ 등이 적힌 현수막을 펼쳐드는 등 항의에 나섰다. 충남지역 여성단체들은 이날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캠페인을 지지한다는 의미를 담은 검은 옷을 입고 “안희정을 법대로 처벌하라”며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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