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이 결국 법정관리의 길을 걷게 됐다. STX는 한 달 후까지 노사가 합의한 자구책을 제출해야 한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8일 공동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의 처리방안을 발표했다. 수천 개 일자리의 명운이 달려있는 것은 물론, 이미 조 단위의 자금이 투입된 이슈인 만큼 각계의 주목도도 높았다. 간담회가 열린 산업은행 대회의실에 수십 명의 기자들이 몰린 한편 바깥에서는 기업회생을 요구하는 노조의 앰프 볼륨이 한층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동안 두 조선사의 앞날에 대해 수많은 추측성 보도들이 발표됐으며, 관계당국은 이때마다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이날 간담회가 수차례의 관계자 회의와 컨설팅을 바탕으로 결정된 당국의 공식 입장이 발표되는 첫 자리였던 셈이다. 이동걸 산업은행장과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다소 경직된 자세로 두 조선사의 처리방침을 공개했다.

◇ 성동조선해양, 결국 법정관리… STX는 사업재편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을 법정관리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이 직접 “사업재편과 추가 비용절감 등 다양한 경쟁력 강화방안이 고려되더라도 현 상태로는 독자생존이 불투명하다”고 설명했다. 부족자금을 추가 지원하더라도 회수가능성이 없어 결국 국민경제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울 것이라던 당초 예상대로였다.

반면 STX조선해양은 산업은행이 단독으로 관리를 맡았다. 독자생존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고강도 자구계획을 실행하고 LNG·LPG 운반선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다는 계획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조선사의 규모를 축소하고, 기능을 조정해 회생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여유는 많지 않다. 산업은행은 한 달 후까지(4월 9일) STX 노사가 자구계획안과 사업재편방안을 합의·제출하지 못할 경우 원칙대로 법정관리를 신청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종절차에 들어가기 전까지 일종의 유예를 준 셈이다. 산업은행은 “컨설팅 업체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40%의 인력 감축과 원가절감·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산업은행 자체적으로는 그 이상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 “성동은 이익실현 불가능… STX는 기회요인 있어”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에 대한 처리방안을 발표하는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좌)과 이동걸 산업은행장(우). <뉴시스>

경영실적이 악화되면서 나란히 파산의 문턱에 섰던 두 조선사지만 판결은 서로 달랐다. 차이를 가른 것은 양자의 재무상황과 주력 선종의 업황 전망이었다.

성동조선해양은 회사의 부실화 및 구조조정의 역사가 긴 반면 경영실적은 여전히 부진하다는 점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채권단이 경영정상화 방안을 추진키로 결정한 지난 2010년 7월부터 공정 유지와 선박 건조를 위한 신규자금 2조7,000억원과 신규수주 지원을 위한 RG(금융기관으로부터 지원받는 선수금) 5조4,000억원,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출자전환자금 1조5,000억원 등이 투입됐다. 그러나 성동조선해양의 2015년 수주실적은 네 건에 그쳤으며, 16년에는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STX 역시 성동조선처럼 심화된 경쟁과 낮아진 가격경쟁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다만 최근 대규모 출자전환을 통해 재무건전성이 개선됐고, 이미 열 척이 넘는 수주잔량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1,475억원의 가용자금을 바탕으로 채권단의 신규자금지원 없이 일정기간 독자경영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도 당장 법정관리절차에 돌입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다.

업황 전망도 온도차가 있었다. 같은 중소조선업체라 하더라도 주력 선종이 다르다. 성동조선해양이 주력으로 삼고 있는 수에즈막스 선종(13~15만톤급)과 아프라막스 선종(8만~11톤급)은 국내 공급과잉과 중국 후발업체들의 추격에 시달리고 있으며, 향후 시장전망도 좋지 못하다.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이 향후 2021년까지 두 주력선종의 발주량을 예년 최고수준의 30~40%밖에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STX의 경우 주력 선종인 파나막스(6만~7만톤급)와 핸디막스(5만톤급) 시장이 비교적 양호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점쳐졌다. 건조 경험이 있는 소형 LNG 선박 또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국제 조선·해운업계의 흐름상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성동조선해양에 이어 STX마저 법정관리절차를 밟는다면 국내 중소조선업 생태계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됐다.

◇ 수출입은행의 깊은 고뇌

이날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성동조선해양에 법정관리 결정을 내린 근거를 밝히며 “법정관리가 곧 파산선고는 아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해야 했다. 성동조선해양이 지난 2016년 법정관리 처분을 받고, 결국 파산했던 한진해운과 같은 길을 걷지 않겠냐는 여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은성수 행장은 성동조선해양의 희박한 독자생존 가능성에 비춰 볼 때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며, 이후 기업의 회생 여부는 법원과 채권단의 판단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다른 이슈는 원칙주의를 내세운 국책은행의 결정에 대한 책임론이었다. 법정관리를 선언하며 신규자금지원 가능성을 없앤 선택에 대해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있는 한편, 보다 빨리 금융지원을 중단했어야 했다는 시선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은성수 행장 또한 이를 의식한 듯 “당시(2016년 경)에는 배를 건조하고 있었고, 채권단의 지원 없이 자체보유자금으로 회사가 굴러가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작년 7,8월에 와보니 유동성이 말라가고 부도 위험도 높아졌다”고 노선을 변경한 이유를 설명했다. 또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식으로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며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어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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