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정책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연설비서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프레너미(Frienemy)란 말이 있다. 친구(Friend)와 적(Enemy)이란 단어를 합쳐 만든 신조어로 “서로 협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경쟁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강대국 중에 프레너미의 대표적인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흔히들 러시아와 중국이 서로 대립관계라고 알고 있는데, 알져진 것과 달리, 현재의 미국 일극체제 앞에서 양국은 서로 군사 협력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러시아와 중국은 만주-시베리아 국경선을 확정하면서 양국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을 제거했고, 이후 2005년부터 ‘평화사명(peace mission)’이라는 명칭으로 매년 육해공 삼군이 대규모로 참가하는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냉전 초반에 중소 관계가 양호했을 때도 실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자신들보다 더 힘이 센 상대인 미국을 앞에 둔 양국의 현재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베트남 관계도 프레너미에 가깝다. 양국 간 이념과 군사적 측면에서의 협력은 한계가 있으나, 경제협력에 있어 만큼은 비약적인 관계증진을 이루고 있다.

지난 2018년 2월 26일, 관세청과 한국무역통계진흥원이 발표한 <한․베트남 무역현황 분석자료>에 따르면, 韓수출시장에서 베트남이 미국, 중국 다음인 3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베트남에 연간 약 3억 달러의 유·무상 원조를 제공하는 최대 개발협력 대상국이기도 하다. 한류의 원조 국가답게 한국 TV 드라마, 영화, 음악이 많은 베트남인의 일상적인 삶의 한 부분이 돼 있다. 한국산 화장품, 의상, 음식 등 한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려는 베트남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놀라운 관계증진이다. 2014년 전경련에서 주최한 베트남 산업시찰에 참여해,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포스코, ㈜화성을 둘러보며 한․베트남의 관계증진의 모습을 직접 체험한 필자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양국은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10년간 32만 명을 파병해 현 집권세력인 베트남민주공화국과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다. 지울 수 없는 가슴 아픈 역사다. 그러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양국은 불행한 과거를 딛고 화해와 협력, 공동번영의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이렇게 한국과 베트남은 국가와 국가 간의 ‘프레너미’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한․베트남 수교 협상 당시, 한국 측 대표는 “악연이라도 유연(有緣)이 무연(無緣)보다 낫다”라는 말을 했다. 이에 베트남 측 대표는, “우리는 현명한 민족이다.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두 국가의 현명한 판단이 지금, 양국이 정치적 관계를 넘어 경제․문화관계에서 합리적인 벗으로 나아 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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