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배급사인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배급한 영화 '리틀포레스트'와 CJ E&M이 배급한 골든슬럼버, 궁합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사진은 위쪽 시계방향으로 '리틀포레스트'와 '궁합', '골든슬럼버'의 한 장면.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문화계 골리앗 CJ E&M이 굴욕을 맛보게 됐다. 올해 상반기 야심차게 선보인 기대작들이 다윗 격인 저예산 영화에 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서다. CJ E&M이 배급을 맡은 영화 ‘궁합’과 ‘골든슬럼버’는 70억원에 가까운 제작비와 스타급 주연배우의 등장에도 손익분기점을 넘는데 사실상 실패한 반면, 비슷한 시기 스크린에 걸린 ‘리틀 포레스트’는 ‘웰메이드 힐링 무비’라는 입소문을 타고 극장가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제작비 5배 차… 복병 ‘리포’에 혼쭐난 ‘문화 공룡’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인기가 매섭다. 교사를 꿈꾸다 임용고시에 떨어져 귀촌을 택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삶에 찌든 관객들에게 ‘소확행’의 참뜻을 되새겨주며 흥행 역주행을 이어가고 있다. 개봉 2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지난 10일 상영 스크린 수는 전일 대비 70개 가량 늘어나 700개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1000만 영화’가 16편이나 나온 지금, 일견 관객수 100만명은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성비를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리틀 포레스트의 순 제작비는 15억원. 상업 영화의 평균 제작비로 알려진 5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해 처음이자 16번째 1,000만 영화로 기록된 ‘신과 함께’와는 무려 13배 차이가 난다. 리틀 포레스트의 100만 관객 돌파가 블록버스터 기획 영화의 1,000만 돌파 못지않은 의미를 가진 이유다.

단순히 흥행에만 성공한 건 아니다. 평론가와 관객들의 호평이 쏟아지면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호불호가 엇갈릴 수 있는 영화 시장에서 하나의 평가 기준으로 대중에 인용되고 있는 씨네21 기자단 평가에서 리틀 포레스트는 평균 6.14의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점수가 짜기로 유명한 모 기자는 “신선도를 내세운 사계절 뷔페”라는 짤막한 평과 함께 별점 3개의 후한 점수를 줬다.

저예산과 중소 배급사(메가박스 플러스엠)라는 핸디캡을 무릅쓰고 흥행에 성공한 리틀 포레스트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 행렬에 동참할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CJ E&M이다. CJ E&M은 자신들의 막강한 배급력을 활용해 지원 사격에 나섰던 상반기 기대작들이 연거푸 흥행에 실패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여기에는 작품 자체가 관객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 탓도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맞붙은 리틀 포레스트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 강동원도 조기 강판… ‘궁합’도 손익분기점 위태위태

75억원. 추석 극장가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 영화 ‘골든슬럼버’의 제작비다. 거대 자본을 투입해 만든 광화문 폭발신과 톱스타 강동원 단독 주연, 여기에 요즘 영화‧드라마계 트렌드인 언론과 거대 권력 기관이 등장해 흥미를 자극할만한 요소로 가득한 이 영화는 개봉 후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관객몰이에 실패하고 만다. 800곳이 넘던 스크린 수는 개봉 일주일 만에 200개 가량 줄어들었고, 2주 뒤 리틀 포레스트, 궁합 등 신작들이 개봉하면서 167개로 곤두박질 쳤다.

결국 영화관에서 조기 강판한 골든슬럼버는 11일 기준 138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270만을 넘는데 실패한다.

같은 날 개봉한 영화 ‘궁합’도 리틀 포레스트의 기세에 밀린 모양새다. 개봉 3주차에 들어선 11일 궁합은 관객수 126만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최근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리틀 포레스트가 역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영진위에 따르면 근사한 차이로 앞서가던 궁합은 지난 8일을 기점으로 매출액 점유율 등에서 리틀 포레스트에 밀리기 시작해 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60억원이 투입된 영화 ‘궁합’이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250만명을 넘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리틀 포레스트의 역주행과 ‘사라진 밤’, ‘툼 레이더’ 등 신작 개봉으로 그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외화인 ‘블랙 팬서’를 제외하고는 규모나 화제성 면에서 경쟁작이 안 보이던 2월 극장가에서 CJ E&M은 연거푸 참패하는 쓴맛을 보게 된 셈이다. 문화 공룡 CJ E&M에 쓴 맛을 보게 한 주역이 ‘리틀 포레스트’라는 건 두말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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