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미래 경제전망에도 먹구름이 깔렸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재화의 분배나 산업의 존속성과는 별개로, 자유무역이 보호무역보다 더 많은 거래를 보장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수입품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것 또한 상품교역을 통해 국제사회의 효용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외국의 수출업체를 볼모로 삼으려 한다는 해석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 때문에 세계가 감내해야 하는 손실은 어느 정도일까. 미국 대 나머지 세계의 전면전으로 번질 경우 연 단위 손실액이 한화로 500조원에 달한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뿐만 아니라 채권과 주식시장 또한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교역량 하락이 GDP 감소 유발해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12일(현지시각) 본격적인 무역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국제사회가 치를 경제적 비용이 4,7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부과한 관세는 단순한 시발점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깔려있다.

미국이 수입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세계 각국이 보복조치에 나서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경제전망을 살핀 결과 2020년 2분기 기준 총 무역량은 당초 예상보다 3.7% 줄어들며, 이에 따라 전 세계 GDP는 0.5% 감소하게 된다. 액수로 따지면 약 4,700억달러, 현재 환율(1,065.5원) 기준으로 500조원이 넘는다. 더구나 높은 무역장벽은 경쟁을 줄이고 아이디어와 기술의 교환을 가로막는 부가적인 효과도 있다. 이는 생산성의 저하를 유발해 현대사회의 주요 이슈인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할 것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무역 전쟁을 시작한 미국의 피해가 더 컸다는 점이다. GDP가 0.9% 하락하는 한편 물가상승률의 가파른 상승세가 예상됐다. 이는 경제 전반과 고용이 양호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낮은 물가상승률 때문에 금리 인상을 주저해야 했던 지난 수개월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이다. 블룸버그는 무역 전쟁이 발발한다면 세계의 중앙은행 대다수는 빠른 물가상승률과 약한 수요 사이에서 힘든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러나 보고서를 작성한 블룸버그의 경제전문가 제이미 머레이와 톰 올릭은 이것이 ‘극단적인 상황’임을 인정하면서도 “더 이상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는 의견도 함께 밝혔다.

한편 미국이 수입품에 20%의 관세를 적용하는 시나리오를 적용한 결과에서는 2020년에 세계 GDP가 1.3%, 총 무역량은 7.8%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 미국 채권과 주가에 경고장 보낸 투자회사들

무역분쟁은 세계 금융시장의 주요 위험요인 가운데 하나다. <뉴시스/AP>

무역 전쟁은 실물경제뿐 아니라 금융계에도 깊은 상흔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 다만 투자자들은 아직까진 관세전쟁의 위험성을 피부로 느끼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9월 한때 2.06%까지 내려갔던 미국의 10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은 올해 들어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1월 초 2.5% 선을 돌파했으며, 2월 말부터는 2.85~2.91% 사이에서 움직이는 중이다. 약 4년만의 고금리다.

그러나 일부 자산운용사들은 국고채 수익률이 곧 반락할 것이라고 내다보는 중이다. UBS자산운용의 투자분석가 케빈 짜오는 블룸버그를 통해 “금융시장의 가장 큰 위험요인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긴축정책도, 중국의 저성장도 아닌 미국의 무역 전쟁이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의 10년채 수익률이 향후 3개월 내에 2.5% 아래로 다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실렸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알루미늄 관세방침이 발표된 지난 1일 420p 하락했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이후 다시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 현재까지 반등 폭은 3% 가량이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코스틴 자산전략가는 “투자자들은 무역 분쟁이 격화되리란 우려는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증시가 회복된 배경을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언과는 달리, 시장에서는 가장 보호무역중심적인 정책들이 입법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관세가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 관세정책방향, 23일 후 가닥 잡힐 듯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관세명령에 서명하며 동맹국들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협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15일의 유예를 뒀다. 앞으로 열흘 남은 조정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국가들이 면제대상에 포함되는가는 향후 미국이 얼마나 매파적인 관세정책을 추진할지 가늠해볼 잣대가 될 전망이다.

현재 면제대상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국가들은 캐나다와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뿐이다. 12일(현지시각)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이 농업과 제조업 분야에 대해 관세협상을 벌이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남은 국가들의 발걸음도 더 바빠진 상태다. 한국 또한 주요 동맹국으로서 관세 면제조치의 필요성을 어필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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