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우원조
▲17대 국회의원 정책비서관 ▲18대, 19대, 20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연설비서관 ▲부산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도화지에 흰색만 칠한다면 환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될까? 흰색은 까만색이 있을 때 돋보이며 그 가치를 드러낸다. 그리고 더 아름다운 그림이 완성되려면 다양한 색을 칠해 주어야 한다.

밤이 사라지고 환한 아침만이 지속된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아침의 밝음 못지않게, 밤은 어두움만의 낭만과 여유로움을 품고 있다. 그렇게 밤과 아침은 함께 ‘하루’라는 것을 완성한다.

대한민국은, 흰색과 까만색이 서로를 돋보이게 해주듯이, 아침과 밤이 주고받듯이, 끊임없이 진보와 보수가 힘을 주고받으며 그 명맥을 이어왔다. 늘 서로를 견제하며 때론 뼈저리게 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기면서 더 나은 정치,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는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가?

너무나 좋아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아픔을 가진 쪽과 영원히 공주로 인식하고 지켜주고 싶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쪽의 쓰라린 고통만이 대립하고 있다. 서로의 이야길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말만하고 있다. 극심한 소통의 결핍 속에 대한민국은, 단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럼, 대한민국은 다양한 목소리가 인정받는 사회인가?
가는 목소리도, 굵은 목소리도, 높은 목소리도, 낮은 목소리도 차별 없이 서로의 다른 다양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사회인가?

그렇다고 말하기엔, 서로가 다른 의견에 너무 비판적이다. 단 한명의 다른 의견까지도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까. 다수결의 원칙만큼 중요한 것이 상대주의다. 만약 상대주의가 없이 다수결만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전체주의밖에 안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하루가 시간에 따라 다르게 변하듯, 1년 365일이 자연의 순리대로 변화하듯, 모든 것이 서로 다른 게 정상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인정해 줄 때 발전 할 수 있다.

자문해 보자. 우리 스스로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의 목소리만 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군사독재 시절의 총․칼보다 더 무서운 획일화된 언어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입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소리에도 한번 귀를 기우려 보자. 나와 생각이 같든 다르든, 어느 누구의 어떤 생각이든 존중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것을 비난할 자격은 그 어느 누구에도 없다. 다르다는 것은, 더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힘이기 때문이다.

<파워 오브 원>에서 닥은 피케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연은 모두 서로 협동한단다.
해가 없으면 달빛도 없지.
둘이 합쳐야 달빛도 생기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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