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수사가 막바지인 가운데 전직 경찰관들이 MB정부 당시 '경찰 블랙리스트' 공개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위크>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뇌물 수사가 막바지인 가운데 MB정부 당시 경찰 조직 운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직 경찰들에 따르면 MB정부 당시 내부비판에 나섰던 경찰들이 파면, 해임, 감봉 등의 징계를 당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달리, MB정부의 경찰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시작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지적해오던 전직 경찰들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지금이라도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후 시작된 ‘경찰 잔혹사’

경찰 내부개혁을 위한 전·현직 경찰관들의 모임 ‘무궁화클럽’과 시민단체들은 올해 1월 31일 MB정부 시절 경찰관 블랙리스트 공개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의 경찰 수뇌부들은 경찰 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린 경찰들에 대한 감찰을 벌이고 파면과 해임을 일삼았다”고 고발했다.

이후 지난 2월 17일 양동열 전 무궁화클럽 사무총장은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게시했다. 2009년 11월 파면된 양동열 전 사무총장은 재직 당시 경찰내부 게시판 대표 논객으로 활동했었다. 그는 파면 2개월 전에 있었던 직원교육에서 김 모 총경이 ‘경찰 내부에서도 촛불 잔존세력이 존재한다’고 말하자 해당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양동열 전 사무총장의 청원글에 따르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다음해인 2009년부터 MB정부가 국정원과 경찰청, 군기무사 내 사이버부대를 만들고 커뮤니티와 SNS, 각종 내부 게시판 등을 전수조사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내부 게시판에 비판글을 올리거나, 주요 논객으로 활동했던 경찰관들이 가급, 나급, 다급으로 분류돼 감찰을 받았다고 양 전 총장은 주장했다.

2008년 5월 22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미국산 쇠고기수입과 관련한 국민 의견수렴 미흡 등을 사과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그러나 촛불시위 당시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고, 누가 주도했냐"며 화를 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뉴시스>

양 전 총장은 자신은 가급에, 경찰 내 성과주의 정책을 비판했다가 2010년 7월 파면된 채수창(무궁화클럽 공동대표) 전 강북경찰서장은 나급에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급의 경우는 거의 종북좌파로 매도됐다고 비판했다. 양 전 총장은 국민청원에서 “특히 하위직 경찰들의 인권침해 피해가 가장 많았지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이 없었다”면서 “지금도 경찰과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2년 7월 <오마이뉴스>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재임 중 2008년부터 2012년 5월까지 약 4년간 징계를 받은 경찰들은 4,722명이나 된다. 이 중 중징계인 파면과 해임이 993명에 이른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중 4년간 중징계를 받은 경찰은 609명이다. 또 전직 경찰들의 증언처럼 2009년부터 징계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801명이던 징계자는 2009년 1,169명, 2010년 1,154명, 2011년 1,256명 등 꾸준히 증가했다.

더욱이 MB정부 4년간 중징계를 받고 조직에서 쫓겨난 993명 중 행정소송 등을 통해 업무에 복귀한 경찰은 355명(36%)이나 된다. 3분의1은 부당 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무궁화클럽에 따르면 10년 가량이 지난 현재도 일부 전직 경찰들이 재심 청구 등의 법적 다툼을 준비하고 있다.

◇ “경찰 조직, 과거 잘못 청산 못하면 미래도 없어”

지난 15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는 MB정부 당시 청장이었던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 국장이었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 전 청장과 김 전 청장이 2011~2012년 경찰청 보안국을 통해 보수단체를 동원, 댓글부대를 운영했다는 혐의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전 대통령 개인에 대한 뇌물 수사에서 정권 차원의 불법행위까지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경찰 내부 블랙리스트 및 부당 중징계에 대한 공식적인 수사나 조사는 개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현 경찰 조직이 수사 의지가 전혀 없다”면서 “국민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적극적으로 개선의지를 보이면서 정작 내부 조직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 부하직원 인권도 못 챙기면서 어떻게 국민의 인권을 챙기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하위직 현장 경찰의 인권은 곧 국민의 인권이다. 이 문제는 쉬쉬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채 전 서장은 “부당하게 징계를 받은 경찰들의 정신적, 경제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아픈 과거라도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앞으로의 개혁도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7월 1일 오전 11시께 경찰의 성과주의로 인한 범인 검거 경쟁이 심화됐다며 '항명 파동'을 일으킨 채수창 전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감찰 조사를 받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채 전 서장은 결국 같은달 22일 파면됐다. <뉴시스>

당시 감찰 대상에 오른 경찰들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도 인권침해가 자행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규수 무궁화클럽 공동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찰들이 밤샘 업무를 하고 퇴근을 하려는 상황에서도 조사실로 불러댔다”면서 “평소 문제도 되지 않던 훈방조치도 샅샅이 조사해 ‘근무태만’ ‘직무유기’ 딱지를 붙여 징계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징계위원회 위원이 5명인데 꼭 3대 2로 징계가 결정됐다”면서 “마치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것처럼 치밀하게 진행됐다”고 꼬집었다.

조 공동대표는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사람들은 조직 내 문제에 대해 개선을 촉구한 경찰들이 대부분”이라며 “이 전에는 게시판이 활발하게 운영됐지만 그 후로는 경찰들이 글도 잘 쓰지 않고, 댓글도 달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 “경찰, 댓글부대 운영... 블랙리스트와 본질 같아”

전직 경찰들이 대표적으로 거론하는 중징계 피해 사례로는 양동열 전 사무총장과 채수창 전 서장 외에도 ▲경사 박윤근(2009년 파면) ▲경사 장재룡(2009년 파면) ▲경사 김흥현(2010년 해임) ▲경위 고 김명렬 ▲경위 정해권(2010년 파면) ▲경사 천훈호(2010년 해임) ▲경위 고 김영대 등이 있다. 이들 모두는 내부게시판 논객으로 활동했었다.

이들 중 고 김명렬 경위는 감찰의 압박이 조여오자 자신이 작성한 글들을 삭제하고 주변에 불안감을 호소하다 돌연 사망했다. 고 김영대 경위 또한 감찰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2009년 퇴직 후 후배인 양동열 전 사무총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긴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외에도 내부비판을 했던 수많은 경찰들이 감봉, 정직, 해임, 파면 등의 징계를 받거나 동향 파악을 당하는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지적이다.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 2010년 8월 2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양동열 전 수서경찰서 경사가 조현오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양 전 경사는 2009년 11월 파면됐다. <뉴시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던 양동열 전 무궁화클럽 사무총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파면 한 달 전에 내부 관계자(경정)에게 ‘전 공무원 중 사정대상 1호이니 조심하라’는 말을 직접 들었다. 이 자체만으로 블랙리스트가 증명된 셈”이라며 “파면 후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 선고 전 갑자기 선고날짜가 변경되면서 화해조정이 열렸고, 파면이 아닌 해임을 권유받았지만 거부했다”고 말했다.

양 전 총장은 “현재 경찰 댓글부대가 드러나 논란이지만, 이는 블랙리스트와 같은 선상의 문제”라면서 “경찰관 블랙리스트 피해자에 대한 진실 규명 또한 경찰이 외면해선 안 되는 중요한 적폐청산 대상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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