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지주가 23일 주주총회를 열었다.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김정태 회장의 3연임 안건은 압도적 득표율로 통과됐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23일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은 이른 아침부터 붐볐다. 본사 4층 강당에서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1층 로비에서부터 주주들이 길게 늘어섰기 때문이다. 현장은 개회 1시간 반 전부터 시작된 주주들의 입장 행렬과 출입을 통제하는 직원들, 그리고 안건 부결을 외치는 노조의 앰프 소리까지 겹쳐 다소 혼잡한 분위기였다.

이날 주주총회의 가장 큰 이슈는 제3-7호 의안, 김정태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건이었다. 지난 2012년 3월부터 하나금융지주의 회장을 맡아온 김정태 회장은 최근 각종 비리와 부정에 연루되면서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아직까지 법적으로 확정된 혐의는 없지만 그가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의 수장이라는 점, 그리고 그의 의혹들이 국정농단과 채용비리 등 국민정서를 가장 깊숙이 건드리는 이슈들이라는 점에서 파문이 클 수밖에 없었다.

주주총회장에 입장하는 주주와 신원을 확인하는 하나금융지주 관계자. <뉴시스>

◇ 호실적과 함께한 ‘3연임 안건’, 어렵잖게 통과

하나금융지주 관계자가 김정태 회장이 3연임에 성공했음을 확인해준 것은 오전 11시 50분경이었다. 주주총회가 오전 10시부터 시작했고, 당시 아직 개표가 진행 중이었으니 약 두 시간 가까이 회의가 진행된 셈이다.

사측이 공개한 개표 결과는 찬성표 84.6%, 반대표가 약 15%였다. 하나금융지주 노조와 경제 시민단체, 일부 의결권 자문사들이 반대 의견을 강력히 표명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수월하게 통과된 셈이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하나금융지주 주주총회 의안을 분석해 내놓은 찬반 권고안은 김정태 회장의 명과 암을 뚜렷이 드러낸다. 국내 기업지배구조 전문 연구소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지난 16일 “김정태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정태 회장이 KEB하나은행의 채용·인사비리에 대해 ‘직간접적 최종 의사결정자’라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최순실의 금고지기’로 불렸던 이상화 전 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을 특혜 승진시켰다는 의혹도 있다.

반면 해외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근거는 최근 뚜렷한 상승세를 보인 하나금융지주의 실적이다. 하나금융지주가 작년 기록한 2조1,170억원의 당기순이익은 16년(1조4,000억원)보다 51% 이상 늘어난 수치며, 3년 연속 1조원의 벽을 넘지 못했던 2013~15년의 부진을 완전히 떨쳐낸 것이기도 하다. 지난 2016년 1월 말 1만9,450원이었던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현재(23일) 4만7,250원으로 수직상승한 상태며, 자연히 배당 또한 높아졌다.

하나금융지주 주주의 70% 이상이 외국인인 만큼, 김정태 회장이 무난하게 3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최대주주(9.64%)인 국민연금은 중립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극렬 반발한 노조·시민단체… “수사 결과 지켜보겠다”

하나금융지주 노조와 금융정의연대·참여연대는 주주총회 전후로 본사 앞뜰과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개회 전에는 연임 안건에 대해 주주들의 반대 의결을 촉구하기 위해, 가결 후에는 지속 투쟁 의지를 피력하기 위해서였다.

하나금융지주 노조와 금융정의연대, 참여연대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사위크>

연임 반대 피켓을 든 노동조합원들과 나란히 선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한 시간 가까이 김정태 회장의 연임을 두고 찬반 논의가 있었다”는 말로 회의장 내부의 상황을 설명했다. 가장 먼저 지적된 것은 소통의 부재였다. 김득의 대표는 “(사측은) 모든 질문에 대해 ‘검찰 수사 중이므로 밝힐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저희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아니라면 아니라고 해 달라’고까지 이야기했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사측의 태도를 비판했다. KEB하나은행 노조 대표자는 “김정태 회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의 연임과 관련된 주주들의 질의에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목소리를 더 높였다.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으로 공을 넘기는 발언도 나왔다. 노조 측은 인사특혜와 채용비리 의혹은 물론, 지배구조 검사와 대주주 적격성 심사까지 거론하며 “CEO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현재 하나은행 채용비리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한편 하나금융지주 측은 “(김정태 회장 연임과 관련해) 별도의 입장표명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비공개 주주총회, 정당성 있었나?

하나금융지주는 주주 외 인원의 주주총회 참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진은 별도 개설한 주주총회 입장로를 안내하는 본사 1층 로비의 팻말. <시사위크>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안진걸 참여연대 시민위원장은 금융기업의 공공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안진걸 위원장은 현재 김정태 회장이 받고 있는 의혹들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금융기관 수장으로서의 자격과 도덕성‧투명성‧책임성‧공공성에 대해 노조뿐 아니라 여러 주주들의 지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앞으로도 관련 이슈를 감시해나가겠다며 “하나금융지주가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고, 금융기관에는 특별한 신뢰성과 공공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기자가 주주총회 결과와 내부 분위기를 관계자를 통해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금융지주가 주주가 아닌 인원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 등 타 금융사들이 주주총회의 문을 개방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김정태 회장을 둘러싼 이슈들이 하나금융지주 내부의 문제 뿐 아니라 국정농단과 채용비리 등 범사회적 이슈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연임을 둘러싼 ‘한 시간 찬반토론’을 놓친 아쉬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KEB하나은행노조 박진우 수석부위원장은 23일 아침 기자회견에서 “하나금융지주는 직원이 2만명, 거래인구가 수백만명이다. 이런 거대 금융기업의 주주총회를 비공개로 진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기업이 의사결정과정을 감출 ‘필요성’보다 관련 논의를 공개할 ‘정당성’이 더 크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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