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이 지난 16일 열린 정기주총에서 지난해 경영실적을 설명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최근 정치·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혁을 겪은 우리나라에게 ‘경제민주화’는 아직 남아있는 숙제 중 하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와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 노동자 권리 확보 등 풀어야할 난제가 많다.

그중에서도 주주권리 확립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대주주인 재벌가의 횡포와 각종 부정행위, 그리고 기업들의 비정상적 행태를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경제적 수준에 비해 주주권리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상당히 뒤처지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전자투표제 도입이나 정기 주주총회 분산정책 등 조금씩 개선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주총에서 동국제강과 KISCO홀딩스가 보여준 상반된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같은 뿌리의 두 기업이지만, 소액주주를 대하는 자세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동국제강과 KISCO홀딩스는 과거 한 울타리에서 친족 간 계열분리를 통해 나눠진 기업이다.

고(故) 장경호 창업주는 1954년 동국제강을 설립했으며, 그 뒤를 삼남 고(故) 장상태 동국제강 회장이 이었다. 계열분리가 이뤄진 것은 고 장상태 회장이 2000년 별세하면서다. 그의 두 동생인 고(故) 장상건 회장이 동국산업그룹을, 장상돈 회장이 한국철강그룹을 맡았다. 한국철강그룹의 지주회사가 KISCO홀딩스다.

지금의 동국제강그룹은 장남 장세주 회장이 승계했고, 현재는 차남 장세욱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KISCO홀딩스 역시 장상돈 회장이 물러난 뒤 그의 장남인 장세홍 사장이 3세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즉, 장세주 회장과 장세욱 부회장, 장세홍 사장은 사촌형제다.

◇ 소액주주 계속된 질문에 실무자가 설명… 공장 문까지 여는 동국제강

지난 16일, 동국제강은 서울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정기 주총을 열었다. 이날 장세욱 부회장은 일찌감치 주총장 앞에 나와 주주들을 직접 맞이했다.

주총은 동국제강의 지난해 성과를 소개하는 동영상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어 장세욱 부회장이 지난해 경영실적을 주요항목별로 나눠 자세히 설명했고, “올 한해도 혹독한 사업 환경에서 살아남고 더 나은 실적으로 주주여러분의 믿음에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동국제강의 주총은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참석한 일반주주도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대로 주총이 끝나진 않았다. 장세욱 부회장의 경영실적 설명이 끝나자 소액주주의 날카로운 질문과 지적이 이어졌다.

2005년부터 동국제강 주주가 됐다는 한 소액주주는 먼저 브라질 CSP제철소와 관련해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이에 장세욱 부회장은 추가 설명을 곁들이며 “2019년 말에는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소액주주는 재차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아쉽다”고 말했고, 장세욱 부회장은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곽진수 전략실장에게 추가답변을 요청했다. 곽진수 실장으로부터 더욱 자세한 설명을 들은 소액주주는 “고맙다”며 궁금증이 어느정도 해소된 모습이었다.

이 같은 경영진과 소액주주의 소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 다른 소액주주가 후판 관련 질문을 던졌고, 장세욱 부회장은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설명을 덧붙인 뒤 후판사업본부장에게 추가설명을 하도록 했다.

배당과 관련해서는 소액주주의 질타가 나오기도 했다. 앞서 브라질 CSP제철소에 대해 질문했던 소액주주가 배당을 늘려달라며 “원론적인 답변 말고, 약속을 해달라”고까지 요구한 것이다. 장세욱 부회장은 “제가 아는 상식에서 (배당금을 약속하는 것은) 공정공시에 어긋나는 사안”이라고 난처해하면서도 해당 소액주주의 말을 끝까지 들으며 “앞으로 수익이 잘 나고, 더 많은 배당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한바탕 치열한 공방이 오간 뒤엔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상정됐다. 의견을 적극 개진해온 소액주주는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후보들이 일어나서 인사라도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건넸다. 이에 장세욱 부회장은 사내이사 및 사외이사 후보들이 주주들에게 직접 인사하고, 각오를 밝히도록 했다.

이후 장세욱 부회장은 “주주분들이 생산현장을 직접 참관할 수 있는 공장견학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도전일 수 있는데, 많이 참여하셔서 동국제강의 경쟁력을 확인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하며 주총을 마쳤다. 이어 장세욱 부회장은 많은 질문을 던진 소액주주에게 직접 찾아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 부의안건에서 보고사항으로 바뀐 배당금… 주주제안 ‘묵살’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지난 23일, KISCO홀딩스도 정기 주총을 열었다. 그런데 정기 주총을 앞두고 KISCO홀딩스는 상당히 이례적인 정정공시를 냈다.

당초 KISCO홀딩스는 주총소집결의를 공시를 통해 2건의 주주제안이 접수됐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제1호 의안으로 배당금을 관련 내용을 상정했다. 이사회는 1,250원을 제시했고, 2건의 주주제안은 각각 8,000원과 5,000원의 배당금을 제안했다. 이어 제2호, 제3호 안건인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에 대해서도 주주제안이 함께 상정됐다.

그런데 이 같은 공시는 주총 일주일을 앞두고 정정됐다. 당초 ‘부의안건’에 포함됐던 배당금 관련 사항을 ‘보고사항’으로 옮긴 것이다. KISCO홀딩스 측은 “정정 전 제1호 의안은 상법 및 당사 정관에 따른 재무제표의 이사회 승인요건을 충족해 보고사항으로 변경했다”며 “이에 따라 이익배당에 대한 주주제안은 자동철회됐다”고 밝혔다. 위법은 아니지만, 주주제안을 묵살한 것이다.

주주제안을 낸 소액주주 중 하나는 주주행동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이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주총을 앞두고 기자와 만나 “KISCO홀딩스는 지나치게 많은 현금을 쌓아두고만 있다”며 “비정상적인 경영행태와 관련해 경영진에 수차례 서한을 보내고,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KISCO홀딩스 주총은 이사회가 바라던 대로 끝났다. 배당금은 보고사항으로 변경돼 의결 없이 넘어갔고,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도 이사회가 추천한 후보만 통과됐다. 다만, 소액주주의 거센 질타까지 막진 못했다. 창원에서 열린 주총에 직접 참석한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관계자는 “회사의 잘못된 경영 행태를 지적하는 발언을 많이 했다. KISCO홀딩스 주총 역사상 발전적인 토론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소액주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 소통하는 동국제강. 주주제안 상정을 막아선 KISCO홀딩스. 분명한 것은 경제민주화로 가는 길에 동국제강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서있다는 점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