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약가 정책이 불공정하다며 무역제재를 가해달라고 압박했던 미국이 FTA 개정협상을 통해 자국 신약에 대한 약가 인상을 얻어냈다. <뉴시스/AP>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한국의 약가 정책이 불공정하다며 무역제재를 가해달라고 압박했던 미국이 머지않아 ‘본래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한 ‘한미 FTA 개정협상’에 따르면 ‘글로벌 혁신신약 약가제도’와 관련해 미국 측이 요구하는 내용으로 개선하는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사들은 2009년부터 줄곧 자국 신약 가격이 한국에서 낮게 측정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었다.

◇ 한국에 무역제재 요구하던 미국, 왜?

PhRMA(미국 제약협회)는 지난 2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게 “한국에게 ‘스페셜301조’를 적용해 최고수준의 제재를 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페셜301조는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인)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타국의 불공정행위 감시는 물론 보복조치로 관세 부가 및 수입 제한 등을 할 수 있다.

PhRMA는 2009년부터 꾸준히 우리나라의 약가 정책을 지적해왔다. 그러나 한 번도 최고수준의 제재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이에 업계에선 PhRMA가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본격적으로 압박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됐다.

PhRMA가 주장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임상실험을 한국에서 할 시 약가를 10% 우대해준다’는 정책이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불평등하다는 지적이다. 다음으로는 한국 약가정책의 ‘이중 구조’에 따라 낮은 가격의 약가가 책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등을 거치면서 실질적으로 두 번의 약가협상을 거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 무역대표부에 반박 자료를 보내며 해명했지만 이달초까지만 해도 PhRMA의 입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제한이 받아들여질 경우 우리 측에 보복관세가 붙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당시에도 미국의 목적은 우리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아닌 자국 신약의 약가 인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 FTA 개정협상 발표한 정부... 판 열어보니 “역시나”

국내 업계가 이 같이 분석했던 이유는 한국과 미국의 무역거래 규모 차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내 의약품 규모는 연간 1,400억원 대인 반면 우리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규모는 연간 7,400억원 대다. 이에 미국 수출 규모가 미미한 국내 제약사들은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타격이 크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26일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측이 해외 제약사들에게 국내 제약사와 동일한 대우를 주문했고 우리는 이를 수용하는 보완을 하기로 했다”고 밝힌 것. 이에 따라 향후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해외 신약의 약가가 인상될 경우 그에 따른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한국과 미국의 협상에 따라 향후 미국 제약사의 신약 값이 인상될 경우 그에 대한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난 12일 한미 시민사회단체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크 라이츠너 미국 무역대표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진보네트워크센터, 지식연구소 공방, Knowledge Ecology Internaitonal을 비롯한 한국과 미국의 16개 시민사회단체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한국의 약가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해 한미 FTA 재협상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국적 제약사들의 주장은 오히려 지적재산권에 관한 국제조약(TRIPS 협정) 위반”이라며 “국제인권법에 따른 국가의 인권보호 의무에도 배치된다. FTA 재협상에 양국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강력 촉구한 바 있다.

한편 정부는 협상에 따라 국내 약가제도 개선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약값 인상과 보험료 부담 증가에 따른 여론의 반발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