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이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관저에서 두문불출하던 그는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 문고리 3인방과 대책을 논의한 뒤에야 중대본 방문을 결정했다. 청와대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거나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시작된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꺼낸 말이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당시 이경옥 행안부 2차관은 “갇혀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듯 혼잣말을 했다. “아, 갇혀있어서…”라고.

이른바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의혹의 출발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가 전복된 오전 10시17분 이후 중대본 회의를 열기까지 7시간 동안 상황 파악도 못한 채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28일 ‘세월호 사고 보고 시각 조작 및 대통령훈령 불법 수정 사건’을 수사해온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시 청와대가 국회와 언론에 밝힌 행적은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 늦잠 자는 동안 세월호 전복… 첫 보고 시간 조작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사 당일 유선보고는 물론 서면보고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11차례에 걸쳐 실시간으로 서면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2차례에 불과했다.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에게 대통령 비서실에서 작성된 상황보고서가 11차례 이메일로 발송됐으나,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즉시 전달하지 않았다. 관저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일괄 출력된 상황보고서는 오후와 저녁에 전달됐다. 이마저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읽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검찰에 따르면,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최순실 씨의 방문에 대해 철저히 비밀로 부쳤다. “나중에라도 사실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했다”는 당시 관저 경호관의 진술도 나왔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초 보고된 시간도 사실과 달랐다. 참사 당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TV속보를 통해 세월호 사고를 인지한 뒤 상황보고서 1보 초안을 작성해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에게 전달했다. 김장수 전 안보실장은 휴대전화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연락했지만 통화가 안됐다. 이에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1보를 관저에 전달했으나, 1보는 식사를 담당하는 김막업 씨를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침실 앞 탁자에 놓여졌다. 그때가 오전 10시19분께다. 이미 세월호는 전복된 뒤다.

이후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결국 안봉근 전 비서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침실 앞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을 불렀다. 늦잠에서 일어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장수 전 안보실장의 통화는 오전 10시22분에 이뤄졌다. 청와대에서 밝힌 첫 보고 시간(오전 10시)보다 22분이 늦다. 검찰은 “세월호의 마지막 카톡 발신 시간인 오전 10시17분을 구조가 가능한 골든타임으로 보고, 그동안 대통령이 보고를 받았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보고 시간을 이전으로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 씨의 영향력도 참사 당일 재확인됐다. 최씨는 이날 이영선 전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신분 확인 절차를 밟지 않는 A급 보안손님이었다. 관저에 도착한 그는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안봉근·정호성·이재만 전 비서관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이른바 ‘5인 회의’다. 이 자리에서 최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청와대 수석들이 제안한 중대본 방문을 권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를 수락했다.

◇ 대통령 아무것도 안했다… 최순실 숨기기 급급 

검찰 수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사 당일 줄곧 관저에서 머물렀다. 중대본을 다녀와서도 본관 집무실이 아닌 관저로 향했다.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집무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관저에 있는 동안에는 보고를 회피했고,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한 외부인 방문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최씨가 관저를 방문한 사실이 드러났다. 책임을 회피하고 최씨의 존재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것. 무엇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김장수 전 안보실장과 김석균 전 해경청장에게 의례적인 지시를 했을 뿐 청와대에서 긴급회의 또는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지 않았다. 최씨, 문고리 3인방과 함께 5인 회의를 하고 중대본을 다녀온 게 전부다. 이후 청와대는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불법으로 수정했다. 재난상황의 컨트롤타워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아닌 안행부로 고친 것. 세월호 참사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한편, 최씨 측은 “5인 회의, 중대본 방문 결정에 관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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