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이윤택 연출가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검찰 조사를 받기 전 취재진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이달 23일 이윤택 연출가는 구속된 반면 안 전 지사는 지난 28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피의자의 지위, 피해자의 수, 추행의 정도와 방법 등에 비춰 범죄가 중대하므로 도망할 염려가 있다.” 지난 23일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재판부는 이 같이 밝혔다.

반면 이달 28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은 “수집된 증거 자료와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에 비춰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두 사건에 적용된 범죄 혐의는 다르다. 이 연출가는 상습강제추행죄, 안 전 지사는 피감독자간음·강제추행과 성폭력특별법상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 등이 적용됐다. 이 연출가는 대체적으로 혐의를 인정하고 있는 반면 안 전 지사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법원은 혐의를 인정하는 이 연출가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봤고, 혐의를 부인하는 안 전 지사는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

◇ 영장기각, 범죄 소명과 관련은 없지만...

두 사건의 전혀 다른 결과에 대해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구속 여부는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판단되는 만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류하경 법률사무소 휴먼 변호사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도주우려, 증거인멸 여부는 판사의 재량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비슷한 두 사건에 대해 영장 판사가 전혀 다른 판결을 내린 것도 그 때문이다. 명확한 차이점이나 이유를 설명하긴 어려운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만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검찰이 입증이 부족했다거나 유죄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며 “원래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구속의 사유와 범죄의 유무 여부는 관계가 없다”고 덧붙였다.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느냐 여부가 증거인멸 여부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온다. 선종문 썬앤파트너스 변호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법원이 구속을 결정할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보다는 사안의 중대성과 재범의 우려 등을 더 많이 고려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단순히 두 사건만 비교해 보자면 이 연출가는 피해자가 10명이 넘다보니 구속 쪽으로 가닥이 잡혔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 변호사는 또 “기존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 등의 피해자들이 미성년자이거나 심신미약 상태인 경우가 많은 점도 검찰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며 “안 전 지사가 강력히 부인하는 상황에서 법원도 부담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안희정 전 도지사 성폭력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29일 보강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향후 법원의 결정에 관심이 모아진다. <뉴시스>

◇ 검찰, 안 전 지사 구속영장 재청구 방침

29일 검찰은 안 전 지사의 구속영장을 재청구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은 첫 번째 영장 청구에서는 김지은씨에 대한 조사결과만 적시했다. 그러나 재청구에서는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 A씨에 대한 조사도 포함한다는 계획이다.

검찰은 법원이 밝힌 기각 사유에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없는 만큼 A씨에 대한 보강조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는 안 전 충남지사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1시간여 만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전성협은 안 전 지사를 처음 고소한 비서 김지은 씨와 두 번째 폭로자인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 A씨 등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전성협은 재판부가 기각 사유로 피의자의 방어권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강하게 지적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피의자 방어권만큼 피해자 안전권도 중요하다”면서 “특히 업무상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의자의 구속 여부에 따라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도 크게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배 상임대표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 생소하다. 그만큼 피해자들이 잘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적 안정 지원과 피해 입증,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에 주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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