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 상하원 합동의회에서 취임 후 첫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여의도 정가에서 “선거제도가 문제다”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주요 정당은 지난해부터 국회 내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나섰다. 이에 시사위크도 8회에 걸쳐 대한민국의 선거제도 문제점을 짚고 국회의 선거제도 개편 방향을 제안하려 한다. <편집자 주>

[시사위크=김민우 기자]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이에 따라 우리보다 먼저 의회민주주의를 도입한 선진국들의 선거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 가장 독특한 선거제도를 가진 나라 중 하나를 꼽자면 미국이 빠질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제는 중임제로 4년에 한 번씩 열리지만, 간접선거와 직접선거가 혼합된 특유의 난해함에 매번 국내에도 소개되고 있다.

이웃 국가인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이 안에서도 중의원과 참의원제로 나뉘며 각각 임기가 4년과 6년 등 독특한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례대표 확대를 위해 일본 중의원 비례대표 선거에 적용되는 석패율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국민이 아닌 선거인단에 결정되는 미국 대선

미국의 대통령은 사실상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 유권자의 투표는 각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에게 투표하고, 이 선거인단이 다시 투표하는 방식이다.

미국 50개 주 전체의 선거인단은 각 주의 상원과 하원의원 수를 합한 수(535명)에 워싱턴 D.C에 3인을 더한 538명이며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선 과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주마다 인구수에 비례해 선거인단 수가 다른데, 캘리포니아가 55명, 텍사스 33명, 뉴욕 31명, 플로리다 29명 등 다양하다.

선거인단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 후보자가 각 주의 국민투표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그 주의 전체 선거인단을 획득하게 된다. 가령 캘리포니아에서 50%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55표를 모두 가져가는 것으로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 막바지에 주를 돌며 유세에 전념하는 것도 이같은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인단 제도는 전체 유권자 표와 상반된 결과를 자주 도출하면서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45대 대통령에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국민 투표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47.2%대 47.9%로 졌지만, 선거인단을 더 확보해 당선됐으며 이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5번째 사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선거인단 제도가 공화당에 유리하다는 지적들이 제기되고는 한다. 유권자 투표에서 앞섰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했던 5명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으며, 면적은 넓지만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 대부분이 공화당의 텃밭이라는 점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즉 인구가 적어도 한 주에 선거인단이 최소 3명이 있어, 대도시 지역 한 표보다 농촌 지역 한 표가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같은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인구가 많고 지역이 광대해 선거절차를 간편히 하려는 목적이다. 아울러 여러 개의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라, 인구가 적고 크기가 작더라도 그 주의 독립성과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차원이다.

다만 간접선거의 성격이 강해 우리나라에 도입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1987년 9차 개헌의 핵심은 유신헌법부터 이어진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꾼 것이 핵심으로 꼽힌다. 아울러 우리 국민이 이번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대통령을 탄핵시킨 사례를 보면 간접선거가 재도입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번 개헌 논의에서도 핵심 쟁점 중 하나는 권력구조(정부형태)다. 현재 대통령 중임제와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이 논의되고 있으나 각종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국민 여론은 그래도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높은 추세다. 이는 아무리 국회가 민의를 반영한다고 하지만, 정부는 국회가 아닌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구성해야 한다는 것을 선호하는 셈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1월 도쿄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진행된 총리 지명 선거에 참석해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석패율제 도입한 일본의 중의원 선거

일본은 의원내각제이자 참의원과 중의원이라는 양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은 총 465석으로 4년에 한 번씩 선거(지역)구 의원(289명)과 비례대표(176석)를 같이 선출하는 혼합형 선거제도다. 선거구 의원은 우리나라와 같이 소선거구제로, 비례대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를 독립적으로 뽑는 현행 병립형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에서는 일본 중의원 선거와 같이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고 석패율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중의원의 석패율제는 일종의 패자부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등록한 후보 중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들만 다시 모아서 그중에서 득표율이 높은 후보를 구제하는 제도다. 가령 보수성향이 강한 영남에서 진보정당 후보가 지역구 선거에서 패배해도 일정 이상 득표율을 얻으면 비례대표로 당선될 수 있어 지역주의 정치구조를 해소할 방안으로 거론된다.

석패율은 당선자와 낙선자의 득표비율을 의미하며, 낙선자의 득표수를 당선자의 득표수로 나누어 100을 곱한 값이다. 가령 A후보가 5만 표로 당선되고 B후보가 4만 표로 낙선했다면 B후보의 석패율은 80%가 된다.

과거 우리 정치권에서도 석패율제 도입에 대해 여러차례 논의한 바 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중·대선거구제와 함께 석패율제 도입을 제안했었고,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 간사회의에서 석패율제 도입이 잠정 합의되기도 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치개혁을 위해 비례대표 의원수 확대·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구제 개편안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에는 고건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고건 회고록:공인의 길'에서 "일본식으로 비례대표를 늘리고 석패율제를 도입하면 훨씬 달라질 것이고, 제3지대 형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석패율제 도입은 때로는 야당이, 때로는 소수정당에서 석패율제의 부작용에 대해 반발하며 번번이 무산됐다.

비례대표 후보자와 순위는 기본적으로 정당에서 결정하는데, 석패율제가 정당의 유력후보를 전략적으로 당선시키는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아울러 거대정당에 비해 정당득표율이 낮은 군소정당의 경우 석패율제를 도입해도 당선인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역주의 정치구조는 해소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오히려 거대양당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확보해야 한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높아 석패율제 논의가 재차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개헌안에도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성 원칙'을 명시하면서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정수 확대, 석패율제 도입, 중대선거구제 등을 논의할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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