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시리아 사태의 배후로 지목받으면서 러시아 증시가 11.44% 폭락했다. 올렉 데리파스카 루살 회장(사진)은 미국 재무부의 제재 목록에 올랐으며, 이번 주가폭락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뉴시스/AP>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모스크바증권거래소가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6일 1,236.48로 한 주를 마무리했던 러시아 주가지수는 9일(현지시각) 1094.98로 전일 대비 11.4% 폭락했다. 국제자산운용회사 ‘반 에크’가 발표하는 러시아 지수연동형펀드(ETF) 인덱스 또한 주가와 함께 10.73% 하락했다.

러시아 주식시장은 한국과의 연관성이 특별히 높은 곳은 아니지만, 기록적인 폭락에 한때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러시아 증시’ 검색어는 10일(한국시각) 아침 6시 55분경부터 두시간반 가량 인터넷포털 검색순위 1위를 지켰다.

◇ 화학무기 배후로 러시아 지목한 백악관, 금융제재 돌입

이번 주가급락 사태로 가장 큰 손실을 본 것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거대 기업과 경영인들이었다. 세계 500대 부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러시아인 27명 중 26명이 지난 하루 동안 모두 160억달러를 잃은 것으로 조사됐다. 인테로스 그룹의 블라디미르 포타닌 회장이 22억5,000만달러, 바기트 알렉페로프 루크오일 사장이 13억7,0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

진원지는 워싱턴이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백악관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 원인이다. 그동안 러시아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엔 발언 수위를 높였다. 9일(현지시각) 각료 회의에서 사린가스·신경가스가 사용됐다는 두마 지역을 조사하겠다고 밝히며 “러시아든 시리아든 이란이든, 혹은 그들 전부든 미국은 (누가 화학무기를 사용했는지) 밝혀낼 것이다”고 엄포를 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조사 대상에 들어가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누구든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미국 재무부가 6일 밤 발표한 대 러시아 금융제재 명단은 모스크바증권거래소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제재 대상은 ‘올리가르히’ 7명과 기업 12개,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17명의 고위 각료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크림 반도·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과 시리아 정부에 폭탄을 비롯한 무기를 공급한 것, 서구사회에 대한 사이버 테러 등 러시아가 받고 있는 의혹들을 열거하며 제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생산기업 주가하락에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세계적인 자원수출국 러시아가 금융제재와 주가폭락에 고개를 숙이자 국제 원자재 가격도 요동쳤다. 러시아는 지난 2016년 기준 국제 니켈 수출의 21%(세계 1위), 알루미늄 수출의 13%(세계 2위)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제재명단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알루미늄 생산회사 ‘루살’의 회장인 올렉 데리파스카도 포함됐다. 세계 297위의 부호인 데리파스카 회장은 러시아 인사들이 2016년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홍콩주식거래소에 상장된 루살의 주가는 이번 제재조치로 하루 만에 50.4% 폭락했으며, 덩달아 데리파스카 회장의 재산도 9억500만달러 증발했다. 국제 알루미늄 가격은 6일 1,966달러에서 2,112달러로 7.4% 상승했다.

세계 최대 니켈생산기업 노릴스크 니켈의 주가도 17.49% 떨어졌다. 주가하락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블라디미르 포타닌 회장이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다. 6일 1만2,890달러였던 니켈 1톤의 가격은 현재 1만3,517.10달러로 오른 상태다.

◇ 즉각 반발한 러시아, 주가변동성 더 높아질 수도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미국 재무부의 금융제재를 ‘확연한 불법’이라고 표현하며 해당 제재가 러시아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에 대한 조사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가 미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주가지수는 9일(현지시각) 전일 대비 46.24p 올랐다. 다만 주식시장이 문을 닫기 2시간 전부터 시작된 하락세 때문에 투자자들의 입맛은 개운치 못하다. 이날 2만4,136.81부터 출발했던 다우존스지수는 오후 한때 2만4,362까지 올랐으나 이후 다시 하락세를 그렸다. 미국이 이미 중국과 무역 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러시아와의 마찰도 본격화될 경우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더 높아질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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