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1 23:12 (화)
[김재필 ‘에세이’] H에게- 플라스틱과 비닐 정책, 대증요법으로 안된다
[김재필 ‘에세이’] H에게- 플라스틱과 비닐 정책, 대증요법으로 안된다
  • 시사위크
  • 승인 2018.04.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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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혹시 미국 하와이 근처에 있다는 ‘지피지피(GPGP)’라는 섬을 알고 있는가? 정식 명칭은 ‘Great Pacific Garbage Patch’일세. 우리말로 옮기면 ‘태평양에 있는 거대한 쓰레기 밭’이라고나 할까. 밭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지 얼른 감이 안 오지? 우리나라 전체 면적보다 15배나 더 크다고 하는구먼. 물론 사람은 살 수 없는 섬이야. 비영리 연구 단체인 오션클린업파운데이션이 지난 3월 23일에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그 섬을 이루고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개수는 약 1조 8000억 개, 무게는 8만 톤이나 된다고 하네. 초대형 여객기 500대와 맞먹는 무게라나.

며칠 전부터 일부 수도권 아파트들이 겪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 수거 대란’을 보니 저 섬 생각이 나더군. 인간이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무리를 지어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섭지 않는가? 처음 등장했을 땐 절대 썩지 않는 물질을 찾아냈다고 많은 환영을 받았던 플라스틱. 하지만 인류는 곧 오래 사용해도 썩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를 알게 되네. 그래서 근래에는 20세기에 들어 지구생태계가 회복불능의 상태로 망가진 원인 물질들 가운데 하나로 플라스틱을 지목하는 사람도 많아졌지.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썩지 않는 인공물질을 볼 때마다 박경원의 <짤막한 노래>라는 정말 짧은 시가 생각나네. “정직하고 부드러운 빵/ 아름다운 푸른곰팡이를 피워내는군/ 자신이 썩었음을 알려주는군.”

빵에 푸른곰팡이가 핀다는 건 그 빵에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래서 시인은 그런 빵을 “정직하고 부드러운 빵”이라고 부르네. 우리들은 무엇이든 썩지 않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걸 더 좋은 것으로 생각하지. 물론 썩지 않는 게 더 좋은 것들도 분명 있어. 한옥의 목재 기둥이나 정치권력은 썩지 않는 게 더 좋지. 하지만 우리가 먹는 음식물 쓰레기나 생활 쓰레기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세. 아마 온 지구가 이런 저런 쓰레기 더미에 묻히고 말 걸세. 이런 상황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

이 세상 만물은 세월이 가면 망가지고 썩는 게 자연의 이치야.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세월이 흐르면 죽어야 해. 그래야 새로운 생명들이 살아갈 공간이 생기지. 또 죽으면 썩어야 다른 생명체들에게 영양을 공급해줄 수도 있네. 식물이든 동물이든 죽으면 썩어서 ‘아름다운 푸른곰팡이’를 피워내야만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지구로 남을 수 있는 거지. 그런 순환이 막히니 ‘제6의 절멸’이라는 말도 나오는 거고.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썩지 않는 게 문제야. 썩지 않으니 불로 태우거나 매립을 해야 하네. 태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미세먼지와 다이옥신 등 유독가스가 환경을 오염시킬 수밖에 없지. 게다가 5mm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인 마이크로플라스틱(microplastic)의 피해는 더 심각해. 크기가 너무 작아서 하수처리시설에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강과 바다로 유입된 마이크로플라스틱은 우리가 먹는 물고기, 미역, 김 등 해산물을 통해 다시 우리 밥상으로 되돌아오네. 점점 내분비교란물질 즉 환경호르몬의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이유들 중 하나지.

플라스틱과 비닐이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알면서도 우리는 너무 많은 플라스틱과 비닐을 사용하고 있어. 2015년 현재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이 핀란드 4개, 독일 70개인데 반해 한국은 420개로 핀란드보다 100배가량 많았네. 연간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2017년 기준 64.12kg으로 미국의 50.44kg, 중국의 26.73kg보다 더 많은 세계 2위 기록이야.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물건들도 굳이 비닐봉지에 넣어서 파는 가게들이 많은 걸 보면 저런 통계 수치들이 이해가 되지. 우리들의 소비문화 형태에 관한 반성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가 10일에 발표한 ‘수거 정상화를 위한 총력 대응 방안’은 문자 그대로 임시변통이고 대증요법이야. 대증요법이 뭔가? 병의 원인을 제거하기 보다는 증상만을 완화하기 위한 치료법이 아닌가. 중앙정부가 ‘수거 정상화’를 위해 환경오염을 더 악화시키는 정책들을 임시변통으로 내놓아서는 안 되는 거지. 중앙정부는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부담을 부과하는 정책, 귀찮아도 일상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 사용을 자제하는 국민들에게 뭔가 혜택을 주는 방법 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맞을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는, 최승호 시인의 <공장지대>라는 짧은 시일세.

무뇌아를 낳고 보니 산모는/ 몸 안에 공장지대가 들어선 느낌이다./ 젖을 짜면 흘러내리는 허연 폐수와/ 아이 배꼽에 매달린 비닐끈들./ 저 굴뚝들과 나는 간통한 게 분명해!/ 자궁 속에 고무인형 키워온 듯/ 무뇌아를 낳고 산모는/ 머릿속에 뇌가 있는지 의심스러워/ 정수리 털들을 하루 종일 뽑아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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