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금감원장이 취임식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김기식 금감원장의 사퇴요구가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6일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언론보도 내용을 모니터링 하고 있지만, 거취여부는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와 금융권 일각에서는 김기식 원장에 대한 공격을 금융개혁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으로 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물론 청와대는 “언론의 해석”이라며 공식적으로는 부인했다. 그러나 김 원장을 물러나게 할 생각이 없음은 너무나 확고하다. 급기야 12일 김 원장과 관련된 의혹에 대해 선관위의 법률적 판단을 구하기로 했다. 도덕적 비난가능성이 있지만 법률적 하자는 없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 김기식 ‘사수’ 의사 분명히한 청와대

아울러 청와대는 19대와 20대 국회기간, 일부 피감기관의 국회의원 해외출장 지원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결과는 민주당 의원 65차례, 자유한국당 의원 94차례를 포함해 총 167차례였다. 현재까지 자료가 취합된 피감기간은 불과 16개로, 전체로 확대할 경우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선관위 판단으로 김 원장에 불법적 요소가 있다면 국회의원 대다수도 불법에 해당한다는 뉘앙스가 묻어난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공식 브리핑을 통해 “수천 곳에 이르는 피감기관 가운데 고작 16곳만 살펴본 결과”라며 “이런 조사 결과를 볼 때 김기식 금감원장이 자신의 업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성이 훼손되었거나 일반적인 국회의원의 평균적 도덕감각을 밑돌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특정인의 문제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청와대가 김 원장 ‘사수’에 나선 것은 김 원장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의 적임자라는 판단 때문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김 원장 임명 당시 “개혁성과 전문성을 갖춘 적임자”라고 했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이 같은 맥락에서 “국민과 언론이 김 원장의 장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숙고해 달라”고 간청한 바 있다.

그렇다면 김 원장의 임명을 통해 추구하려는 ‘금융개혁’이란 무엇일까. 업계 인사들은 하나 같이 재벌구조 개혁과 ‘삼성’을 떠올린다. 연결고리는 ‘보험업감독규정’이다. 19대 국회의원 시절 김 원장은 보험업감독규정 변경, 혹은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삼성의 지배구조 개혁을 촉구했었다. 관련법 개정 실무를 담당했던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보험업감독규정을 바꾸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삼성지배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평가할 정도다. 

◇ 보험업감독규정이 뭐길래

김기식 금감원장의 취임 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매각 여부가 업계 이슈로 떠올랐다. <뉴시스>

보험업법 106조에 따르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기관은 자회사의 주식을 총 자산의 3% 이상 부여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총 자산의 3%’ 산정기준은 보험업감독규정에서 정하고 있는데, 주식의 ‘취득원가’다. 삼성생명의 사례에 적용하면, 총자산 200조원인 삼성생명은 약 6조원 상당의 자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은 시장가격 기준으로 30조에 가까운 삼성전자 주식 8%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산정기준을 ‘취득원가’로 잡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기준을 ‘시장가격’으로 변경하겠다는 게 개혁의 요지였다.

‘취득가격’과 ‘시세가격’ 중 어느 것이 합리적인 기준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취득가격’으로 정하고 있는 현행 보험업감독규정의 혜택을 보고 있는 국내 보험사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김 원장 등이 “오직 삼성만을 위한 특혜 규정”이라고 지적했던 이유다.

산정기준이 시장가격으로 변경될 경우, 삼성생명은 수십조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을 고리로 삼성전자를 지배해왔던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도 상당부분 잃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원장을 비롯해 민주당 인사들은 야당시절부터 꾸준히 이 부분을 공략했으나 번번이 새누리당(현 한국당)과 금융위원회의 반대에 막혀 좌절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박용진 의원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관련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랬던 김 원장이 금융권 검찰로 불리는 금감원장에 앉았으니 삼성으로서는 꽤나 불편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더구나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은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국회를 거치지 않고, 금융위원회 직권으로 가능하다. 집행기관인 금감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금융위 차원에서 검토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원장 입장에서는 칼자루를 쥔 셈이다. 취임하자마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매각 이슈가 업계에서 불거졌던 이유다.

물론 김 원장의 주장대로 보험업감독규정이 당장 개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조가 넘는 삼성전자 주식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올 경우, 주식시장 전반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 나섰던 장하성 실장은 “총수 일가의 전횡 방지를 위해 편법적인 지배력 강화를 방지할 것”이라면서도 “당장 해소하려면 시장의 충격이 크기 때문에 국회가 적절한 (완충)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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