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올해 4월까지 코스피는 준수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주요기업의 순이익 증가율에 비해선 미흡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코스피를 위시한 국내 주식시장은 작년 오랜 침체기를 끝마치는데 성공했다. 16년 말부터 관측된 코스피의 성장세는 올해 1월 장중 2,600선을 넘어설 때까지 지속됐다. 특히 전기전자 제조업을 위시한 대기업의 주가가 뚜렷이 상승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가상승률이 기대치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시가총액 상위권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의 실적이 지난해 큰 폭으로 개선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주식 1주당 순이익 증가율이 수십 퍼센트에서 많게는 11배까지 높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16.3%라는 주가상승률은 ‘성과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 제조·IT·금융기업, 주가상승률이 이익률 하회

한국거래소는 23일 코스피시장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의 주가수익비율(PER) 동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시가총액 상위 50개 종목 중 우선주(삼성전자)와 시계열분석이 어려운 일부 종목을 제외한 43개 종목이 대상이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주식이 실질적인 가치에 비해 고평가됐는지 저평가됐는지를 판가름하는 지표다. 계산방법은 단순하다. 주식가격을 주당 순이익으로 나누면 된다. 주식 하나가 판매되는 가격과 그 주가 나타내는 순이익의 가치를 비교하는 셈이다. PER이 기준연도보다 커졌다면 주가상승률이 이익증가율보다 더 컸다는 뜻이고, 기준연도보다 작았다면 그 반대다.

올해 4월 19일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43개 종목의 전체 PER은 10.32로 전년 동월 동일(11.59)보다 낮아졌다. 작년보다 올해 PER이 낮아진 종목은 27개, 높아진 종목은 16개였다. 업종별로는 헬스케어와 소비재산업의 종목들이 PER의 절대치가 크고, 작년과 비교해서도 더 높았다.

반면 제조업과 IT, 금융 분야는 대부분 PER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당 분야 거대기업들의 주가상승률이 이익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SK의 경우 주당 순이익이 16년 1만3,676원에서 17년 3만7원으로 119% 올랐지만 주가는 23만3,000원에서 29만3,000원으로 25.7% 올랐을 뿐이다. 삼성전자 또한 주당 순이익 상승률이 89.8%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가상승률 29.0%는 상당히 낮게 느껴진다.

◇ 코리아 디스카운트, 경제 ‘여전’·북한 ‘완화’

한국 주식시장의 낮은 주가수익비율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외국 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부른다. 한국만의 독특한 경제‧사회‧정치구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평가절하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대말인 ‘코리아 프리미엄’보다 훨씬 친숙한 표현이다.

이코노미스트가 2012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주식 PER(코스피 기준)은 아시아 주요국과의 비교에서 열위를 면치 못했다. 일본이 20을 넘겼으며 인도가 15, 싱가포르와 홍콩, 대만도 13~15 사이를 기록한 반면 코스피는 중국과 함께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이코노미스트는 ‘눈에 띄게’라는 뜻의 영단어 'conspicuously'에 빗대 'KOSPIcuously low'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코스피 주가지수가 지나치게 낮게 형성돼있다는 지적이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수출에 대한 높은 의존도와 민간부채의 증가세, 그리고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제시했다. 이 중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으로 뽑힌 재벌 이슈는 결국 한국사회의 투명성 문제로 이어진다. 가족경영구도 속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상속세‧증여세 탈루, 자회사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터널링’과 부실 계열사에게 불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핑’ 등의 부적절한 관습이 대표적이다. 작년 여름 경제민주화를 주요 정책목표로 내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장하성‧김상조 교수 등이 정부 요직에 발탁되면서 재벌개혁 바람이 부는 듯 했으나 현재는 정치 이슈들에 밀려 열기가 다소 식은 상태다.

한편 ‘지정학적 위험’이라는 이름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축을 담당하던 대북 리스크는 최근 들어 해결의 기미를 보이는 중이다. 27일(금요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있으며 미국도 북한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코스피가 한창 상승세를 걷던 작년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주가상승세를 꺾는 위험요인으로 작용했다. 예상보다 빨리 완화된 한반도의 긴장은 코스피의 유리천장도 녹여낼 수 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